[지구촌 기업들은 지금]통신업계 공룡 모토로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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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구촌의 기업들은 지금 한 치 앞을 예견 못할 '전쟁' 을 벌이고 있다.

조금만 삐끗하면 시장과 경쟁자들은 사정없이 허점을 파고 든다.

최근 열기를 뿜고 있는 기업인수.합병 (M&A) 붐도 '최강자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 는 위기의식을 반영하는 것이다. 과거 난공불락처럼 여겨졌던 세계적 기업들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규모.질에서 초일류가 되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국제통화기금 (IMF) 의 지원을 받는 경제난 시대에 한국 기업들이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 위해 세계적 기업들의 경영 현장과 변신 움직임 등을 집중 소개한다.

세계 최대의 통신기기 제조업체인 모토로라가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독일의 전자업체 지멘스가 모토로라를 합병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도는 지경이다.

모토로라는 지난 2분기 13억달러의 손실을 입어 13년만에 처음으로 '분기 적자' 를 기록했다.

매출도 전년 동기보다 6.6% 줄어든 70억달러에 그쳤다. 지난해 7월 주당 90.5달러까지 치솟았던 주가는 최근 50달러대로 곤두박질쳤다.

이같은 실적 부진은 모토로라측의 분석처럼 매출의 26%를 차지했던 아시아 지역 판매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올해 중국 등 아시아 시장에서 25% 안팎의 매출 감소가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은 시장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적지않다. 세계 3위의 반도체 제조업체이기도 한 모토로라는 90년대 초 경쟁업체들이 공급과잉을 우려, 메모리 칩 분야를 축소했을 때 오히려 이를 확장했다.

또 아날로그 휴대폰에만 매달리다 디지털화에 한 걸음 늦었다.

경쟁사인 유럽의 노키아.에릭슨은 디지털 통신의 표준화를 서두른 덕택에 시장 진출이 한 발 앞섰다.

이로 인해 미 휴대폰 시장 점유율에서 모토로라는 지난해 34.1% (95년 55%) 로 추락했다. 노키아는 24.5%,에릭슨은 14.4%로 급성장했다.

▶호출기 ▶휴대폰 ▶위성통신 장비 ▶무선통신 장비 등으로 세분화된 사업 방식도 한때 효율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나 점차 불필요한 내부 경쟁을 유발, 최근 부문간의 불협화음이 극에 달했다.

심지어 디지털 통신 교환 설비를 개발해 놓고도 이에 적합한 휴대폰을 개발하지 못해 2년여간 무용지물로 만든 적도 있었다.

더욱이 오랫동안 최정상의 자리에 안주하다 생긴 오만함으로 인해 소비자.협력업체들에게 불친절하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쌓아왔다.

다급해진 모토로라는 지난달 8일 전체 직원의 10%에 해당하는 1만5천명을 해고하고 각 부문을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모두 19억5천만달러의 비용이 들어가는 이 작업이 완료되면 연 7억5천만달러의 비용 절감 효과가 생길 것이라는 것이 모토로라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구조 조정보다 모토로라가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은 '이리듐' 위성휴대통신 (GMPCS) 사업이다.

모토로라가 전체 자본금 (45억달러)가운데 17.7%의 지분을 출자, 한국의 SK텔레콤 등 세계 20여개 업체를 끌어들인 이리듐은 지난 5월 72기의 위성망 구성을 완료하고 9월부터 상용 서비스에 들어간다.

그러나 경제위기로 컨소시엄에 참여한 아시아 통신업체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는데다 위성통신 분야에 대한 각국의 규제가 통일되지 않아 걸림돌이 되고 있다.

또 모토로라는 연간 휴대폰 단말기 판매가 2천만개에 이르는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 대륙을 적극 공략함으로써 재기를 노리고 있다. 지난 5월 한국에 3년간 3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것도 이를 위한 전초기지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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