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총·야당선 비정규직 대란 없다지만 문제는 해고되는 약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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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1일 비정규직 보호법이 개정되지 못한 것과 관련, “국회의 논의 과정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며 정치권을 강하게 비난했다.

비정규직 해고 근로자들이 1일 서울 민주노총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은 복직과 함께 대량해고 방지를 위한 대책을 요구했다. [연합뉴스]

이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을 자청해 “비정규직 근로자의 실직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제출한 법률안이 상임위원장(민주당 추미애 의원을 지칭)의 상정 거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것은 행정부의 정당한 법률 제안권을 무시하는 비민주적 처사로, 정상적인 상황으로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여야 간사와 한국노총·민주노총이 참여한 5인 연석회의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고용주체인 경영계는 완전히 배제했고 비정규직 근로자를 대표하지 못하는 노동단체만을 일방적으로 참여시킨, 변칙적인 논의 구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연석회의를 만든 한나라당을 비판한 것이다.

그는 노동계에 대해 “정규직 중심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정규직 전환만 주장할 뿐 당장 일자리를 잃을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은 채 조직의 입장만을 주장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공공부문의 해고는 정책 의지가 있으면 막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지난해까지 공공부문 비정규직 중 상당수가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8만 명이 넘는 것으로 안다. 현재 남은 비정규직은 정규직 전환 대상이 아닌 사람인 줄로 알고 있다. 민간 부문에선 대기업과 금융권에서 3만5000명 정도 전환한 것으로 안다. 그 이상은 없는 상태다. 현실적으로 정규직 전환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의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지 않았다.

“정부는 많은 고심 끝에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4년을 내놨다. 그런데 정치권이나 노동계에서 미봉책이라고 했다. 그런 비판을 했던 정치권이 겨우 ‘유예안’을 놓고 논의한다. 유예가 뭔가. 미루는 것이다. 그것이 정부안보다 나은 것인가.”

-이런 사태가 예견됐다면 노동부가 미리 나섰어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해부터 대량해고 위험을 꾸준히 얘기했다. 그런데 야당이나 노동계는 ‘장관이 그런 얘기하니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던 기업도 법이 개정되기를 기다린다. 장관이 정규직 전환을 막는다’고 비난했다. 그럼 법이 시행된 지금, 그들이 말한 기업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켰는가. 분명 계약 해지했을 것이다. 실상을 제대로 봐야 한다.”

-국회의 논의 과정에 노동부와 경영계가 참여하지 못했다.

“국회가 여론을 수렴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런데 노동계의 말만 들었다. 양 노총이 입법기관인가. 합의하지 않는 한 법을 처리 못한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것이다.”

이 장관은 “한마디 덧붙이겠다”며 말을 이었다.

“지금 비정규직 해고사태는 일반적인 해고와 다르다. 있는 일자리를 놔두고 나가라는 것이다. 노동계나 야당은 ‘비정규직 대란은 없다. 총고용에 변화가 없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큰 변화를 겪고 있다. 우리는 소란스러워야 대란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아주 불만이다. 이 문제는 약자의 해고다. 강자는 떠들 수 있다. 조용히 해고가 벌어지고 있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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