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시티 오브 엔젤']다시 사랑에 빠진 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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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천사들은 당연히 인간들과 다르다. 그들은 새벽녘엔 해변에서 해뜨는 소리를, 노을이 질 무렵이면 해지는 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빌딩 옥상이나 다리위에 걸터앉아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것을 즐긴다.

이렇게 사는 천사가 인간을 사랑하는 일은 본래 사랑이 모순투성이인 것 이상으로 아픔과 혼돈을 동반하는 일. 영화 '시티 오브 엔젤' 은 통속적으로 말하자면, '해서는 안 될' 사랑이야기다.

두 연인이 금기를 깨고 자유를 얻는 순간 행복이 깨져버리는 줄거리는 비극적 사랑이야기의 전형이다.

삶을 마감한 영혼을 하늘로 데려가는 천사 세스 (니콜라스 케이지) .병원을 맴돌던 그는 어느날 환자의 죽음에 절망해 눈물을 흘리는 의사 메기 (멕 라이언) 의 눈빛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그녀를 부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상황에 괴로워하던 세스는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모든 인간이 겪는 고통과 죽음을 그 대가로 치러야 하는 선택이다.

브래드 실버링 감독은 이 비극적 사랑을 감성이 돋보이는 영상으로 표현해냈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에서 자조적인 표정 연기로 인상을 남긴 니컬러스 케이지는 슬픈 눈빛 연기로 감독의 감성 연출에 부응한다.

멕 라이언은 예의 그 발랄함보다는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 처럼 연기에 무게가 실렸다.

'시티 오브 엔젤' 은 89년 독일 빔 벤더스 감독이 연출한 '베를린 천사의 시' 를 리메이크한 것. 천사와 인간의 사랑을 그린 것은 같지만, 그것을 매만진 감독의 스타일은 도시 로스앤젤레스와 베를린의 이미지만큼이나 다르다.

삶의 의미에 대해 사유한 '베를린 천사의 시' 가 철학적이고 시적이었다면, 러브 스토리에 비중을 둔 '시티 오브 엔젤' 은 CF처럼 현대적이며 대중적이다.

극장을 나와서도 기억에 남을 만한 몇몇 장면들. 바닷가에 줄지어 서 해뜨는 소리를 듣는 검은 옷의 천사들, 자전거를 타고 두 팔을 벌린채 햇살이 쏟아지는 다리를 달리는 멕 라이언, 연인을 잃고 시장에서 그녀의 추억이 담긴 배를 무더기로 바구니에 담는 니컬러스 케이지. 여름 극장가, '고질라' 와 '아마겟돈' 이 대표하는 요란한 SF액션영화 틈새에서 피어난 잔잔한 사랑영화다.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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