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중앙시평

‘남·남·남’ 갈등과 ‘월천’ 선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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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지난 정부 시절, 남남 갈등은 학계에서도 심했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 수립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학자 그룹은 다른 입장의 학자들을 은연중에, 때론 공공연히 따돌렸다. 대선 승리의 전리품은 학계에서도 있었던 것이다. 마치 정치권의 ‘정풍 운동’처럼 물갈이가 시도됐고, ‘386 진보’로 상징되는 학자들은 학계를 대표하는 그룹이 됐다. 그래서 입장이 다른 학자들은 정부의 자문위원회에서도 점차 제외됐고, 각종 연구 프로젝트에서도 소외됐다.

물론 그 그룹의 모든 학자가 그렇게 속 좁게 행동하진 않았지만, 일부는 심하게 그랬다. 다른 입장의 학자들은 졸지에 ‘수구 꼴통’으로 폄하됐다. 학자가 가진 게 뭐 있겠는가마는, 기득권 세력이라는 낙인이 붙기도 했다.

사회과학을 공부한 학자에게 현실 정책에 의견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진 것은 서운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들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답답해도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간혹 기회가 주어지면 그들은 필요 이상으로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했고,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안타까운 것은 대북정책이 한 방향으로만 전개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견해를 수렴하지 못했고, 보다 광범위한 대안을 검토할 수 없었다. 생산적인 비판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핵심 그룹은 점점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당연히 정책의 폭은 좁아져만 갔고, 그것은 정부로서도 불행한 일이었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으로 새로운 핵심 학자그룹이 등장했다. 이젠 성향이나 이념이 다른 학자들과도 ‘소통’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현 정부의 화두가 그것이므로. 포용도 이뤄지길 희망했다. 이번의 핵심 그룹은 대체적으로 지난 시절의 그들보다 학계 경력으로나 연륜으로나 선배였으므로. 지난번 같이 어린아이처럼 혹은 점령군처럼 행동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간 흐름에 따라 역사가 진보하고 사회가 발전하듯 학계의 성숙도도 높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었고, 그래야 했다.

그러나 지난 시절의 대북정책이 너무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일까. 참아온 울분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문도 일종의 권력이라고 나누기 싫었던 것일까. 주체만 바뀌었을 뿐 편가름과 따돌림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물론 이번에도 모든 핵심 그룹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경우 그랬다. 그러므로 이번의 그들 역시 비판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른 견해는 무시됐고, 때론 아예 묵살당했다. 세부 정책의 작은 부분에 대한 문제점 지적에도 얼굴을 찡그렸다.

심지어 ‘남·남·남’ 갈등이라는 조어까지 나왔다. 과거엔 보수와 진보의 남·남 갈등이었지만, 이젠 보수 안에서도 또 갈래가 있다는 말이었다. 과거엔 진보 진영에 의해 같이 보수로 분류됐지만, 이젠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그대로 따르는 보수와 그렇지 않은 보수로 나누어졌다는 뜻이었다. 듣기에 따라선 ‘난 중앙의 실세 보수이고, 넌 변방의 무의미한 보수’라는 힘자랑이었고, 건전한 비판이란 결국 비난의 포장일 뿐이니 ‘비핵·개방·3000’에 붙든지 ‘햇볕정책’에 붙든지 양자택일하라는 힐난이었다.

지난 시절 느꼈듯,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었다. 5년이 지났어도 변함이 없었다. 실은 더 큰 슬픔이고 더 깊은 안타까움이었다. 조속히 남·남 갈등을 치유해야 할 시점에 오히려 또 하나의 ‘남’을 만들어 내다니.

학자란 다른 견해도 경청할 수 있어야 하고 비판을 수렴해서 더 나은 대안을 만들어 내야 한다. 그것이 학자의 본분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부와 그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따라서 설령 전혀 다른 견해라도 설득하고 이해시킴으로써 끊임없이 지지의 외연을 확장해 가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같은 진영’조차 ‘남’으로 돌려 세우다니.

그 순간, 문득 ‘월천’ 선생들이 떠올랐다. 지난 정부 시절 한 달에 대외활동으로만 1000만원을 번다고 별칭 붙여진 학자들이다. 1000만원이야 당연히 과장이지만, 그만큼 하도 활발히 정부의 자문 활동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은 어떤지, 근황은 알지 못하지만 짐작하건대 뻔하다. ‘남·남·남 갈등’이라는 세상이니, 아마 그들의 생생한 경험과 건설적 비판은 그냥 사장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월천’은 아니더라도 ‘월오백’ 선생 정도로는 남아있게 해야 한다. 물론 돈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의 활동공간을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지금의 핵심 그룹이 성공하는 길이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북한학

◆ 약력: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경제학 박사. 전 한국개발연구원(KDI) 북한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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