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의 굴욕 … 학내 투자기관 지난해 30% 손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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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비즈니스 리더의 산실, 경영학석사(MBA) 과정의 교과서, 파이낸셜 타임스 선정 최고경영자 과정 1위 학교….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HBS)에 붙는 수식어다. 최고의 명성으로 수많은 경제 인재를 배출해 온 하버드대이지만 정작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비켜가지 못했다. 학내 투자기관인 하버드 매니지먼트 컴퍼니(HMC)에 유수의 인재를 기용해 학교 기금을 불려 왔지만 지난해 닥친 금융위기 여파로 큰 손실을 본 것이다.

지난달 27일로 끝난 지난 회계연도 HMC의 기금 운용실적은 ‘마이너스 30%’. 월스트리트 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하버드대 기금은 250억 달러(약 32조원)로 줄었다. 40년 만에 최악의 손실이다. 이 기간 28.9% 깎인 뉴욕증시 S&P 500지수보다도 못한 성적이다.

원래 하버드대의 기금 운용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지난해 금융위기가 닥치기 직전 15년 동안 HMC의 연평균 수익률은 15.7%였다. 같은 기간 S&P 500지수의 연평균 상승률(9.2%)을 훨씬 웃돌았다. 그러나 이런 실적을 믿고 너무 공격적으로 투자에 나선 게 화근이었다.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는 “HMC가 자금을 사모펀드나 원자재 투자에 쏟아붓는 등 위험한 도박을 하다가 망가졌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석유왕 록펠러의 후손인 데이비드 록펠러와 스위스 재벌 한스요르그 비스 등이 각각 1억, 1억2500만 달러를 기부했지만 무너진 둑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하버드대는 지난달 교직원 275명의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전체 교직원의 1%에 달하는 수치로 하버드 역사상 최대 감원이다. 이와 함께 본격적인 허리띠 졸라매기에 들어갔다.

휴일엔 교내 셔틀버스를 운행하지 않고 주 중에 기숙사에서 제공하던 아침식사 서비스도 중단키로 했다. 남은 직원의 임금도 동결했다. 그러자 캠퍼스 이곳저곳에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 무리한 투자로 인한 손실을 교직원과 학생이 떠안게 됐다는 것이다. 도서관 사서인 지오프 캐런스는 “언젠가부터 하버드대는 학교가 딸려 있는 투자은행이 됐다”며 “투자 책임자들을 먼저 해고하라”고 주장했다.

로런스 서머스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의장에게도 비난의 불똥이 튀고 있다. 2006년까지 이 대학의 총장을 지내면서 HMC가 고위험 자산에 투자하도록 방조했다는 것이다. 더 타임스는 “많은 사람이 서머스가 하버드에 한 행위를 미국 경제에도 똑같이 할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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