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구로공단, 벤처기업 둥지 틀자 몸부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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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서울구로동 구로공단 1단지 동일테크노빌딩 5층의 서화정보통신. 남녀 직원 20여명이 밤 늦도록 퇴근을 잊은 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곳에 자리잡은지 1년 정도 된다는 벤처기업 서화정보통신의 박종희 사장은 "업종 특성상 서울 도심에서 가깝고 교통이 편리한 곳을 찾던 중 구로공단이 첨단 분야로 탈바꿈한다는 정보를 듣고 이곳을 선택했다" 면서 "고학력의 연구.기술진을 데리고 일을 하기에 여건이 괜찮은 편" 이라고 말했다.

얼마전부터 부근에 비경시스템 등 벤처기업들이 하나씩 들어서는 등 여건도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는 것. 구로공단이 변신에 몸부림치고 있다.

지난 65년 60여만평의 부지 위에 만들어진 국내 최고령 (最古齡) 인 이 공단은 쇠락과 경기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심형 벤처기업의 보금자리로 탈바꿈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해 정부가 2003년까지 1천6백억원을 투자해 이곳을 첨단 테크노파크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조금씩 속도가 붙고 있다.

구로공단 본부 건물이 자리잡았던 5천여평의 부지에는 정부가 투자, 지난해부터 짓기 시작한 15층짜리 첨단 인텔리전트 빌딩 건축공사가 진행 중이며 이와 별도로 전자.의료정밀업체 등을 주력으로 하는 첨단 테크노 벤처빌딩 4개가 내년 4월까지 세워질 예정이다.

부동산중개사 P사장은 "가끔 첨단 업종에 적당한 공장을 찾는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고 말했다.

구로공단 (공식명칭 산업단지관리공단 북부지역본부) 관계자는 "정부의 벤처산업 육성책 등에 힘입어 변신 작업이 가속될 것으로 기대한다" 고 말했다. 한때는 한국 경제발전의 견인차이자 중소기업의 요람이었던 구로공단이 이렇게 몸부림치는 것은 '이대로는 죽는다' 는 위기감 때문.

지역 대표업종이던 섬유.금속 등이 뒷걸음질치는데다 경제위기까지 겹치면서 구로공단은 급속도로 퇴락했다.

가동이 중단된 유휴 기계.설비들을 뜯어내 동남아.중국 등지로 파는 바람에 마치 폐가를 연상케 하는 공장들도 늘고 있다.

4백여개 입주업체중 IMF 관리체제 이후에만 10여개가 부도났으며 생산시설의 일부 또는 전부를 외국으로 옮기거나 판 곳도 70군데나 된다.

현재 근로자 수는 3만1천명으로 87년의 7만3천명에 비해 42% 수준으로 줄었고, 공단 젊은이들의 향학열을 달래주며 최고 15학급 2천3백여명에 달했던 산업체 특별학급도 올해는 입학생이 22명에 불과했다.

공단 김종훈 과장은 "이대로 가다간 공단의 존폐가 위협받게 된다는 위기감에서 정부와 협조, 첨단단지로 육성하기 위해 뛰고 있다" 고 말했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공단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공단 첫 입주업체인 싸니전자공업은 최근 필리핀과 충주로 일부 생산라인을 이전한 뒤 이곳에 연구소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중이다.

그러나 구로공단이 첨단 테크노파크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까마득하다.

제조업 이외의 입주는 불가능한 공업배치법, 전국 공단중 제일 비싼 땅값에다 열악한 도로사정 등 첨단업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개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홍병기.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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