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최영미 시,현대문학 서평란서 혹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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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행동하는 지성의 큰집' 창작과비평사가 불량시로 시단과 독자를 오염시키고 있는가. 아니면 최고 전통의 문예지 '현대문학' 이 괜한 시집을 트집 잡고 있는 것인가.

'현대문학' 7월호는 중견문인 5명이 공동집필하는 서평란 '죽비소리' 에서 최영미씨의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를 "버젓이 시의 이름으로 세상을 현혹하고 있는 좋지 못한 시, 위험한 시" 라는 식으로 혹평하고 나섰다.

최씨는 94년 첫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창작과비평사刊) 를 펴내며 혜성같이 나타나 지금까지 50여만부를 팔고 있는 베스트셀러 시인. 같은 출판사에서 올 5월에 펴낸 '꿈의 페달을 밟고' 도 발간 두달이 안돼 3만5천여부가 나가며 베스트셀러 수위를 향하고 있다.

그러나 '죽비소리' 는 이 시집이 "의미나 감정의 질서를 충분히 갖추지 못한 일상적 넋두리가 너무 함부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는 것. 시는 산문보다 짧고 모호하다.

그래서 산문에 비하여 시에는 가짜와 거짓이 깃들이기 쉽고 가짜 아닌 척하기도 쉽다. 진실과 무관하게 사람을 현혹하기 쉽기 때문에 좋지 못한 시는 위험하다.

이같이 먼저 나쁜 시의 유해론을 펴며 '죽비소리' 는 최씨의 시를 분석, '엉터리 시' '해로운 시' 라고 내리치고 있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 '꿈의 페달을 밟고' 에서 꿈의 페달을 밟고 달을 찾아가는 상상력은 영화 'E.T' 의 포스터에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달 밝은 밤하늘을 달리는 모습과 같다.

한 시집을 대표하는 시의 중심 상상력이 대중영화의 한 장면에 빚지고 있다는 것. 또 이 시를 엄밀히 살피면 앞뒤가 잘 안 맞는 데가 여러 곳 있고 그 속에 표현된 감정도 불순한 사랑의 노래라는 것.

그래도 이 시는 나은 편이고 이보다 더 혼란스런 언어와 생각과 감정이 함부로 내뱉어진 시들이 이 시집에는 많다는 것이다.

무질서한 감정을 내뱉는 것은 곧 독자를 현혹하기에 위험하다고 '죽비소리' 는 주장한다.

나아가 '죽비소리' 는 이 시집 뒤에 붙은 해설까지 비판했다.

해설은 창작과비평사의 주간인 문학평론가 최원식씨가 썼다.

양심과 정의를 중히 여기는 출판사의 시집과 주간이 호되게 논박당했으니 앞으로 어떤 반응이 나올지 주목된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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