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거다] 화장실부터 고쳐야 농촌 관광객 늘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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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 농촌으로 사흘간 휴가를 다녀온 김준수(36)씨는 마을을 빠져나오면서 수세식 좌변기가 있는 화장실부터 찾았다. 오랜만에 농촌 정취를 만끽하며 푹 쉬었다고 생각했는데 일곱살 난 아들의 표정이 영 밝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좌변기에 익숙한 아들이 지저분한 재래식 화장실 때문에 휴가기간 내내 제대로 일을 보지 못한 것이다. 김씨의 부인도 화장실이 밖에 있어 밤에는 이용하기가 불편했다고 털어놓았다.

농림부가 서울 등 7개 도시 주민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는 이런 불만을 뒷받침한다. 농촌 관광객의 절반 이상이 민박집에서 잠을 잤는데 가장 불편한 점으로 화장실(18%)을 꼽았다. 부족한 샤워 시설과 깨끗하지 못한 방, 불편한 교통이 뒤를 이었다. 강원도 평창에서 민박을 하는 유병엽씨는 "손님들이 예약하기 전에 화장실이 수세식인지와 별도의 샤워실이 있는지를 가장 많이 물어본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부의 지원제도는 관광객들이 가장 가려워하는 곳을 제대로 긁어주지 못하고 있다. 화장실 등 민박 시설을 고치면 싼 이자(연 3%)로 돈을 빌려주기는 하지만 화장실 개선을 조건으로 한 지원제도는 없다.

반면 전라남도는 화장실을 고쳐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전라남도는 지난해 11월 '민박 인터넷계'를 신설했다. 처음에는 방충망 달아주고 이부자리를 사줬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정작 문제는 딴 곳(화장실)에 있었기 때문이다. 정책 방향을 바꿔 '화장실을 고치지 않으면 한푼도 지원 안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75억원을 들여 도내 1500개 민박집 중 600개소의 화장실을 고쳤다.

주영찬 전남도청 관광개발과장은 "지난해 이맘때는 관광객이 해수욕장 주변에만 몰렸는데 화장실을 고친 후에는 대부분의 민박이 예약이 찼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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