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진짜 시장경제 하고 있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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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요즘 한국이 진짜 시장경제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참여정부의 경제 수장 이헌재 부총리의 말이다. 총선과 탄핵 정국이 끝나고 집권 2기의 경제정책 방향을 밝히면서 대통령은 민생안정을 기반으로 개혁과 변화를 시장경제원칙에 충실하게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경제정책의 총책임자는 의문을 제기하고 정책추진의 "뒷다리를 잡지 말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부총리는 반(反)시장경제적 정책의 사례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공직자 주식 백지신탁을 들었으며 정책추진의 뒷다리를 잡는 세력으로 여권의 '386세대'를 겨냥하였다. 물론 당사자들은 이런 것들이 반시장경제적 정책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다.

사실 이와 같은 갈등과 혼란은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 총선을 통해 여대야소로 국면이 전환되면서 정책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임은 이미 예상되었다. 참여정부의 진보 노선은 총선을 통해 국민의 지지를 받았으므로 여소야대하에서 의회의 반대로 추진할 수 없었던 정책들을 새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총선이 끝나자 이 부총리는 "성장을 중시하는 정책을 변함없이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했더니 불과 3개월 만에 자신의 기조가 상당히 견제를 받고 있고 심지어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까지 흔들리고 있음을 실토하게 되었다.

이 부총리를 좌절시키는 현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총선 민의로 명실공히 국정을 책임지게 된 참여정부는 다음 대선과 총선에서 또다시 국민의 심판을 받겠다는 결연한 자세로 자신들의 노선을 추구하면 된다.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나 주식 백지신탁제가 이 부총리의 주장과 달리 부동산 투기를 막고 부패를 청산하기 위한 시장경제적 정책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정책을 책임진 사람이 자리를 걸고 정책방향이 시장경제에서 멀어지고 있음을 토로할 때에는 우선 경청하고 잘못을 시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

많은 사람은 정부의 개혁과 혁신을 주목하고 있다. 자금 여력이 있는 기업들은 투자를 미루고, 여유있는 가계는 소비를 미루면서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계기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시장경제 기조는 일단 의심받게 되었다. 더구나 부총리 이전부터 정부와 여당의 시장경제 기조가 말뿐이라며 강하게 의심해 오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들의 의심을 새삼 확인하게 되었다.

탄핵 정국과 총선이 끝나면서 국민은 그동안 소홀히 했던 경제현안과 민생을 챙기고 국민통합과 경제 살리기에 매진할 것으로 기대하였다. 그러나 집권 2기에서도 개혁과 반개혁으로 편 가르기가 심화되고 상생과 포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개혁은 시장경제 확립에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런데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반개혁세력으로 몰아가면 개혁은 시장을 만들기 위한 개혁이 아니라 시장을 인위적으로 바꾸기 위한 개혁으로 탈바꿈하고 만다.

한편 경제는 투자와 소비 침체가 지속되면서 경제구조적 문제를 치유하지 않으면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 수도 있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국정 책임자들이 해야 할 일은 우리도 시장경제를 하고 있다고 항변하거나 의심하는 자를 의심할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추구하는 정책들이 시장경제원칙을 따르고 있는지 겸허한 자세로 되돌아보아야 한다.

시장경제를 강조한 로널드 레이건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측근들은 대통령의 정책을 확인시키기 위해 애덤 스미스의 옆모습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축하파티에 참석하였다고 한다. 참여정부의 시장경제 기조가 의심을 받고 있는 지금, 우리 정책담당자들도 시장경제를 상징하는 넥타이라도 매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렇게 외쳐야 하지 않을까? "한국은 진짜 시장경제를 하고 있습니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