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들리는 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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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원재길(1959~ ) '들리는 소리'부분

바로 아래층에서
전기 재봉틀 건물 들어 올리며
옷 짓는 소리
목공소 전기톱
통나무 써는 소리
카센터 자동으로
볼트 박는 소리

굉음에 하늘 돌아보니
불빛 번득이며
먹구름 밑 낮게 나는 헬리콥터
어서 지나가면 좋겠는데
아까부터 시동 걸려
골목에 버티고 선 트럭
너는 모든 침묵을
소음의 자식으로 여겨라
모든 소음은
침묵의 아비로다
사람의 모든 색(色)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려 애써라(후략)



바슐라르는 책을 읽다가 옆집에서 못 박는 소리가 들리면 "저건 아카시아 나무를 쪼는 내 딱따구리"라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사실 소음과 침묵의 차이는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모든 옷과 가구가 저 소음으로부터 왔다는 걸 생각하면 우리 또한 소음의 자식임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이 내는 모든 소리를 사람으로 대접하라"는 시인의 말처럼.

나희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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