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도 망한다]퇴출 충격에 전전긍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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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동남.대동.동화.경기.충청 등 5개 은행의 퇴출에 따라 기업들은 자금난 심화와 부도사태가 일어나지 않을까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중소업체들은 중소기업 전담은행인 동남.대동은행이 퇴출대상에 포함된 데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부산.대구.경기.충청 등에서는 지역 경제활동이 더욱 위축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퇴출은행 직원들의 반발이 노사갈등을 자극하지 않을까 하는 예상이 커지고 있으며 수출업체들은 외환거래 중단 등으로 수출활동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걱정이다 =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직.간접적으로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면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30대그룹 계열사는 퇴출은행들과 주거래관계를 맺고 있는 곳이 거의 없으며, 7백76개 상장기업중 대전 소재 계룡건설산업.동양백화점 등 2개사만 충청은행과 거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에 따르면 5개 퇴출은행의 중소기업 대출은 10조5천6백82억원에 이른다.

정부는 기업들이 타격을 입지 않도록 하겠다고 강조하지만, 지금까지의 예로 볼 때 일선 금융기관에서의 사정이 달라 이중 상당부분에 대해 회수요구가 들어올 것으로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인천 남동공단의 기계제품업체 K사장은 "어음할인과 신규대출이 어려워지고 기존대출에 대한 조기상환 요청이 들어와 중소기업들이 연쇄도산하지 않을까 걱정" 이라고 말했다.

레저용 고무보트업체인 우성아이비㈜ 이휘재 (41) 사장은 "중소기업은 대출의 일정부분이 신용대출인데 새 은행이 인수한 이후 조기상환을 요구하지 않을까 불안해 하고 있다" 고 말했다.

건자재.난방기기부품업체인 K금속 관계자는 "거래하던 대동은행 전산망이 마비돼 입출금이 제대로 안되고 있는데 이런 상태가 며칠만 지속되면 살아남을 수 있는 중소기업은 없을 것" 이라면서 신속한 대책을 요구했다.

수출업무 차질도 예상되고 있다. 신원식 (申元植) 무역협회상무는 "퇴출은행마다 약 5백개의 중소무역업체들이 거래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며 "거래은행이 바뀐 뒤에도 수출환어음 매입.신용장개설 등에 어려움이 없도록 정부와 금융권이 지원해 줘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도 "대기업 대출은 총액여신한도에 묶여 있는 데다 퇴출은행의 감자 (減資) 와 중소기업전담은행의 퇴출로 금융권의 대출여력이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일부에서나마 자금가수요 현상이 생기지 않을지 모르겠다" 고 걱정했다.

◇지역경제에 대한 타격 = 부산.대구.충청 등의 지역 산업계는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부산지역 1만6천여개 중소기업에 3조5천억원을 빌려주고 있는 동남은행의 퇴출소식에 영남제분 유원기 (54) 사장은 "부산지역 경제가 완전히 엉망이 되게 됐다" 며 울상을 지었다.

특히 부산의 경우 동남은행 퇴출로 인해 행정업무에 차질이 예상돼 부산시가 비상이 걸렸다.

동남은행은 신용카드로 버스 등을 탈 수 있는 '하나로교통카드' 를 개발해 시스템 운영을 맡고 있는데 업무가 사실상 마비돼 시스템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경기은행의 경우 거래가 많은 남동.시화.반월 등 수도권공단 입주업체들이 자금수요가 몰리는 월말에 은행이용이 어려워져 심각한 연쇄부도 사태가 생기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인천시는 이날 한미.경기은행과 경인지방노동청.인천상의 등 관련기관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대책회의를 갖고 경기은행 업무정지가 장기화될 경우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협의했다.

대구는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이후 경일.대구종금과 대구.대동리스 등의 폐쇄결정에 이어 대동은행까지 문을 닫게 되자 "대구경제를 빈사상태에 빠뜨리자는 것이냐" 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대구상의 관계자는 "종금사에 이은 대동은행 퇴출로 9조원에 이르는 지역 산업자금 유통이 마비돼 우량기업까지 자금난을 겪게 될 것" 이라고 지적했다.

대전상공회의소 한만우 회장은 "충청은행 퇴출은 지역경제 입장에서는 대란 (大亂)" 이라고 말했다.

대전상의는 29일 낮 긴급회장단회의를 갖는 등 대책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또 일부 지방에서는 관련은행의 주주들이 "정부정책을 믿고 투자했다가 망했다" 며 항의하는 모습도 나타나고 있다.

한편 경기 등 시금고를 맡고 있는 은행이 퇴출함에 따라 앞으로 금고업무를 둘러싼 유치전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부.경제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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