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칼럼]헷갈리는 구조조정 방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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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기업 구조조정은 말도 많고 문제도 많다.

정부에서 힘깨나 쓴다는 사람들은 다 한 마디씩 하는데 앞뒤가 맞지 않는다.

더욱이 연일 발표되는 대책들은 어제 다르고 오늘 달라 기업이나 투자가들은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우왕좌왕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심각한 문제는 구조조정에 대한 국내외 시각차다.

현지에서 확인한 미국투자가들의 입장은 분명히 "말은 그만하고 구체적인 행동을 보이라" 는 것이다.

연초에 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던 투자가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역시 현실은 무시할 수 없는 것" 이라면서 지켜보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것이 최근엔 실망으로 바뀌었고 심지어 새 정부의 이행능력을 의심하는 투자가들도 있다.

정부가 구조조정을 서두르는 이유는 경제 회생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면도 있지만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을 댈 외국인 투자가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면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미국 방문 중 金대통령이 직접 "투자하기 좋은 나라" 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상태다.

뭔가 화끈한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존재할 수 있다.

"잘못된 생각" 이라던 '빅딜' 도 그래서 다시 튀어 나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쇼는 구경꾼들이 이해할 때만 박수를 받는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수용할 수 없는 내용이나 진행방식으로 박수는 커녕 거부감을 일으키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대부분의 구경꾼은 게을러서 억지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외국인 투자가들이 보기 원하는 것은 한마디로 부실한 기업이나 은행이 문닫는 것이다. 자력갱생이 불가능한 대기업은 추가 대출을 주면서 종업원 서너 명에 불과한 기업을 퇴출시킨다면 누가 봐도 웃을 일이다.

자본이 완전잠식된 시중은행은 그냥 두면서 몇 개 지방은행을, 그것도 다른 은행에 인수시키는 작업을 외국인이 얼마나 이해할까. 지금은 '정치적 판단' 을 유보할 때다.

권성철 전문위원 (시카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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