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리뷰] '휴먼 코메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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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 연극 ‘휴먼 코메디’에는 침묵의 미학이 있다. 대사와 대사, 그 사이에 피어나는 말 없음의 여운이 객석을 흔든다.

객석은 매진이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부터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까지 관객층도 다양했다. 무엇이 이들을 평일 밤에 대학로(서울)까지 불렀을까. 연출을 맡은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임도완 소장은 "비극은 희극을 담아내지 못하지만, 희극은 비극을 거뜬히 담아낸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연극 '휴먼 코메디'에는 인간과 슬픔, 그리고 웃음에 대한 따뜻한 방정식이 녹아 있었다.

작품은 '가족''냉면''추적' 등 모두 세 편의 에피소드로 짜여있다. 먼저 '가족'의 막이 올랐다. 먼 바다로 배를 타러 떠나는 아들과 잠시라도 더 붙잡아 두려는 가족의 애틋한 해프닝이 벌어졌다. 눈길을 잡아당긴 것은 마임과 연극을 섞어 놓은 독특한 형식미였다.

코에다 빨간 공을 하나씩 붙인 배우들의 표정과 몸짓은 영락없는 피에로였다. 이들은 대사도 던졌다. '휴먼 코메디'는 마임에 담긴 여백과 침묵, 은유와 여운을 꽤나 연극적인 흐름으로 풀어가고 있었다. 특히 가라앉는 배에서 아들이 물에 잠겨 죽는 장면을 묘사할 때가 압권이었다. 객석에선 배꼽을 잡으며 웃음이 터졌다. 가장 비극적인 장면에서 터지는 폭소. 그것은 삶을 향해 날리는 가슴 찡한 비틀기였다. 희극과 비극이 너무도 닮았음을 연출가는 슬픈 웃음을 통해 역설하고 있었다.

두번째 에피소드 '냉면'은 마임으로 푸는 '미니 뮤지컬'이다. 다섯명으로 꾸려진 합창단에서 실수만 연발하는 한 남자를 통해 일탈의 웃음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러나 춤도, 노래도, 웃음도 너무 평면적이었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추적'은 여섯명의 배우가 무려 14개의 배역을 소화하는 작품이다. 극의 템포는 빨랐지만 이야기는 다소 밋밋했다. 그런데 마지막에 5분간 공개된 '변신의 순간'은 놀라웠다.

1인 다역을 위해 가발과 의상을 3~4초 사이에 갈아입는 '비밀'을 목격한 관객들은 "우~와!"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거기에는 움직임에 관한 실험과 배우들의 땀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8월 29일까지 서울 대학로 창조콘서트홀, 1만2000~2만원, 1588-7890, 1544-1555.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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