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파일]'수달'계기로 본 언론 허위보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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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KBS 박권상 사장을 비롯한 지휘계통 관계자 전원징계 사태로 몰고간 '자연다큐멘터리 수달' 의 인위적 연출 사건은 우리 언론의 신뢰성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은 우리 언론이 옴부즈맨 제도, 정정과 반론의 지면 반영,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정정보도 청구권의 활성화 등의 장치를 통해 책임있는 언론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에 터져 나온 것이어서 더욱 당혹스럽다.

언론의 허위보도는 사례가 드물기는 하지만 진실을 은폐.조작한다는 면에서 언론의 존재 이유를 뒤흔드는 행위다.

지난 68년 12월11일 A신문은 '공산당이 싫어요 - 어린 항거 입찢어' 라는 제목으로 이승복군이 공비들로부터 살해됐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후 이 기사가 작문이라는 의문이 계속 제기돼 오다 한국기자협회가 발간하는 저널리즘 92년 가을호가 조작된 기사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현장에서 유일하게 목숨을 건진 승복군의 형 학관씨는 A신문 기자를 만난 사실조차 없었다.

따라서 승복군의 입에서 터져나왔다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는 말은 기자가 만든 것이었다. 이승복군 이야기는 73년부터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에 실려오다 97년부터 교과서에서 사라졌다.

기자들의 작위로 허위보도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부의 압력에 의한 허위.과장보도도 있다.

이 경우에도 언론이 압력에 항거하지 못한 잘못은 여전히 남는다.

오보 모음집 '무엇이 오보를 만드는가' (언론노동조합연맹 간) 는 그러한 대표적인 예로 '평화의댐' 기사를 들었다.

86년 10월31일을 전후해 국내언론은 일제히 '평화의 댐' 기사를 보도하면서 "북한이 금강산 지역에 건설하는 댐이 전쟁용으로 폭파될 경우 서울이 물바다가 될 것" 이라며 북한측에 공사 중지를 촉구했다.

댐이 터지면 63빌딩이 물에 잠긴다는 등의 보도로 국민들간에 공포감이 번졌고 이 여론을 이용해 '평화의 댐' 건설 모금운동이 펼쳐졌다.

이 기사는 '5.3인천사태' 를 계기로 국민들의 개헌요구가 확산돼 가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정권이 바뀐 93년 6월 감사원의 감사로 의도적으로 과장된 발표임이 드러났다.

사실 허위보도의 정의는 매우 엄격해 흑백사진을 컴퓨터의 도움으로 칼라화하는 것도 허위보도로 간주된다.

지난 96년 5월23일 북한공군 이철수 대위가 미그 19기를 몰고 귀순한 사건이 중앙일간지의 1면을 장식했다.

당시 공군에서는 이대위가 미그기에서 내리는 모습의 사진을 제공했다.

흑백이었던 이 사진이 신문에 실리면서 컬러로 둔갑했다.

한 신문은 배경에 구름까지 컴퓨터로 그려 넣었다.

이러한 허위보도.과장보도는 언론을 감시하는 수용자 단체와 당사자인 언론사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점차 사라지는 추세에 있다.

그 중에서도 수용자 단체의 감시 활동이 더 필요함은 물론이다.

김상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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