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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환란 그후1년]1.위기를 다시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지난해 7월2일 오전8시30분. 태국 중앙은행은 "바트화의 페그 시스템을 더 이상 고수하지 않겠다" 고 선언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외환 딜러들은 앞다퉈 바트화를 팔겠다고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이날 바트화 가치는 미 달러에 대해 무려 15%나 폭락했다.

아시아 금융위기의 진원지인 태국이 3월8일 시작된 헤지펀드의 줄기찬 공세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다.

아시아 위기가 발생한지 1년을 맞아 위기 과정.원인과 아시아 경제의 현실.해법.전망 등을 6회 시리즈로 살펴본다.

◇ 위기 확대 과정 = 태국 바트화를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루피아화, 말레이시아 링깃화 등 각국의 통화가치가 끝없이 추락하면서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실물경제를 강타했다.

각국의 통화가치가 추락하는 과정에서 외국 자본들이 동요하기 시작, 주식.채권 투자 형태로 들어와 있던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서 혼란은 증폭됐다.

선진국 금융기관들은 일제히 채권 회수에 들어갔다.

이 때문에 아시아 각국에서 외화 자금이 단기간에 빠져나가면서 외환위기가 본격화됐다.

자국 통화가치를 떠받치기 위해 외환보유고를 풀었지만 시장의 압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무디스.스탠더드 앤드 푸어스 (S&P) 등 미 신용평가기관들이 연거푸 각국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고 나섰다.

결국 태국 (8월).인도네시아 (10월).한국 (12월) 이 차례차례 국제통화기금 (IMF)에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외환위기 다음에는 아시아 각국의 실물경제 자체가 가라앉았다.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고 신용경색이 심화되면서 아시아 각국의 실물경기는 급격히 침체됐다.

수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고 실업이 급증했다.

자산가격이 폭락하는 자산 디플레도 가속화되고 있다.

홍콩의 부동산가격이 지난해 최고치 대비 무려 40%가량 폭락한 것이 대표적이다.

◇ 원인.배경 = 위기가 도미노식으로 확산된 원인에 대해 여러가지 주장이 무성하다.

일부 경제전문가들은 지난 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미.일 등 선진국들이 적정 환율을 무시하고 엔화 가치를 조정해왔던 것이 오늘날 아시아 경제위기를 초래한 원인 (遠因) 이라고 말한다.

94년말까지 엔고 (高)가 유지돼 아시아 각국의 수출경쟁력이 살아나다가 95년 하반기 이후 급격하게 엔저 (低) 현상이 진행돼 아시아 각국의 무역수지를 악화시켜 지금의 혼란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아시아 각국 경제에 잔뜩 낀 거품도 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이다.

자신의 실력에 걸맞지 않게 주식.부동산 시장이 부풀려졌다.

성장 신화에 도취돼 한국.말레이시아.태국의 주가는 지난 75년부터 94년까지 1천6백~1천7백%나 올랐다.

지난 95~96년 외국인 투자자금이 들어오면서 과열 양상은 이어졌다. 금융체계가 잘 정비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장을 무분별하게 연 것이 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각국이 정부 주도의 성장방식을 택한 결과 돈 흐름이 시장논리를 무시하게 돼 기업들의 과잉.중복투자를 막지 못했다는 얘기다.

김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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