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무너지는 중산층]상.어떻게 살아갈까 잠도 안온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중산층 붕괴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 이후 밀어닥친 실업.감봉.자산디플레의 파고가 중산층 가계에 가장 큰 타격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산층의 기준을 일률적으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현대경제연구원이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략 월소득 2백50만원에 30평 정도의 집에 살면서 문화와 여가활동을 즐기고 안정된 직장과 자가용을 가진 가정을 꼽는다.

97년 통계청이 제시한 평균 중산층은 이보다 약간 처지는 연간소득 2천3백만원 수준이다.

이들 중산층의 위기는 IMF 전후의 부도 도미노가 불러온 대량실업으로부터 시작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61만5천명이던 실업자수는 지난 5월말 현재 1백49만명으로 세배 가까이로 늘었다.

실업은 소득감소와 직결된다.

실직을 면하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감봉으로 인한 소득감소로 고통받기는 마찬가지다.

중산층의 주축을 이루는 화이트칼라 근로자 대부분이 올들어 총액기준으로 최고 30%의 봉급 삭감을 감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물가상승률을 10%라고 가정한다면 실질 소득은 36%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중산층은 소득구조상 근로소득 비중이 자산소득보다 높다.

이 때문에 실직과 감봉의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주식과 부동산 등 자산가치의 폭락도 중산층을 짓누르는 요인이다.

소득감소를 자산을 처분해 메우려 해도 거래 자체가 어려운데다 판다고 해도 적지 않은 손실이 불가피하다.

소득은 주는데 지출부담은 갈수록 무거워진다.

주택구입이나 주식투자를 위해 돈을 빌려쓴 경우 사정이 더욱 나쁘다.

고금리로 원금 상환은커녕 이자 부담조차 벅차다.

금융기관들은 개인의 신용하락을 빌미로 신규대출을 안해주고 기존 대출도 회수하기 시작했다.

물가상승의 부담도 만만치 않다.

환율상승으로 수입물가가 오르고 공공요금도 들먹인다.

특별소비세.고용세.교통세 등 각종 세부담도 늘어난다.

간접세 중심의 세수 확대책은 중산층에게 상대적인 부담을 가중시킨다.

이런 상황에서 중산층이 생존을 위해 택할 수 있는 지출을 줄이는 일이다.

중산층의 구매력 감소와 자발적인 소비축소는 경기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내수기반마저 무너뜨릴 우려가 크다.

그 결과는 경기침체의 가속화다.

경기침체는 다시 기업부도 - 실업증가 - 자산 디플레 - 가계소득 감소 - 소비지출 감소 - 경기침체라는 악순환을 부른다.

많은 중산층 가정이 보험과 적금을 깨서라도 견뎌보려 하지만 안정적인 소득이 없으면 한계가 있다.

결국 은행 대출금을 제때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히는 가계가 늘어나고 있다.

7대 시중은행만 따져봐도 4월말 현재 연체금은 1조6천억원이 넘는다.

신용카드 연체자를 합치면 사실상 개인파산은 벌써 상당한 규모로 일어나고 있다고 추정된다.

중산층 붕괴는 경제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중산층 개념 자체가 단순히 중간소득계층이 아니라 정치.문화적으로 한 사회를 주도하는 핵심적 계층을 지칭하는 만큼 이들의 몰락은 적지 않은 정치.사회적 파장을 몰고온다.

삼성경제연구소 유상영 (柳相榮) 박사는 "우리나라 성장과 민주화를 이끌어온 중산층의 좌절은 그동안 쌓아온 민주적 가치를 후퇴시키고 가족이라는 우리 사회 최후의 안전판마저 허물어뜨릴 우려가 있다" 고 지적한다.

자칫 IMF 위기극복의 대전제인 사회통합의 기본틀이 깨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박장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