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아래아 한글과 한컴사는 별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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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워드프로세서 아래아 한글에 대한 국민들의 사랑이 뜨겁다.

아래아 한글 사용자와 벤처기업협회에서 국민정서에 호소한 '아래아 한글을 살리자' 는 열기가 시민.사회단체와 국어학자들로까지 확산하고 있다.

그러나 아래아 한글에 대한 이같은 사랑이 제대로 결실을 이룰지는 의문이다. 아래아 한글을 살리자는 애정은 좋지만 자칫하면 감정만을 앞세운 일회적 캠페인으로 흐지부지 끝날 우려가 적지않기 때문이다.

우선 생각할 점은 아래아 한글살리기 운동이 글을 낳은 '한글과컴퓨터' 살리기 운동은 아니라는 점이다. 경위야 어쨌든 부실 책임이 있는 한 벤처기업을 정부나 국민이 나서 도와준다는 것은 '벤처정신' 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때문에 글살리기와 한컴사 살리기는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그러면서 소비자의 시각에서 글을 살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무리 국민정서에 맞고 성능이 뛰어난 제품이라도 시장에서 소비자가 외면하면 사라지는 게 당연한 이치다.

아래아 한글은 기능에서는 앞설지 몰라도 마케팅.영업전략 등 실제 '장사' 측면에선 실패한 상품이다.

아래아 한글이 위기를 맞게 된 것은 불법복제에 대한 느슨한 단속도 한몫 했지만 소비자들이 글을 돈 주고 살 수 있도록 구매동기를 끌어내지 못한 것은 상당 부분 한컴사의 경영잘못이다.

아래아 한글을 지켜내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면 이제는 소비자들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

소비자들은 한없이 넓은 마음과 희생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자기 욕구에 맞지 않으면 아무리 국민정서나 민족적 자존심을 강조해도 제품을 거들떠보지 않는 게 소비자들의 생리다.

여기에는 국산품이니, 수입품이니 하는 논쟁은 끼어들 틈이 없다. 외산이라도 품질이 좋고 가격만 맞으면 손이 가게 마련이다.

그것을 나무라면 안된다. 때문에 글을 살리려면 지금보다 아래아 한글을 더 잘 판매할 수 있는 전략을 세우거나 새롭고 경쟁력 있는 제2, 제3의 아래아 한글을 개발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모처럼 지펴진 글살리기 운동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김종윤 경제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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