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사-북한 장성급회담]북한 잠수정 돌발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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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7년여의 우여곡절 끝에 23일 판문점에서 재개된 유엔군사령부와 북한군 사이의 장성급 대화는 전날 터진 북한 잠수정 침투사건으로 시작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당초 이 회담은 판문점 군사대화 복원의 시험대로 평가됐다.

그러나 간단한 상견례에 이어 유엔사측의 강력한 항의가 이어지면서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는 게 회담 관계자의 전언이다.

유엔사측은 잠수정 침투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 북한측이 상응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나 북한측은 잠수정이 동해 앞바다에서 훈련중 좌초된 것이라고 우기면서 선체와 승조원의 송환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엔사측은 첫 대면인 점을 감안해 북한측을 지나치게 몰아세우지는 않았다.

아직 사건 진상이 철저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도 고려됐다.

그러나 다음번 회담에서는 이 문제를 분명히 짚고넘어가겠다는 복안이다.

이처럼 북한군과 유엔군이 다시 회담테이블에 마주앉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우리 정부가 북측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했기 때문이다.

94년 이후 계속된 북한측의 집요한 군사정전위 무력화 시도로 정전협정체제가 무너진 상황에서 장성급 접촉이 차선책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물론 유엔사측도 그동안 크고 작은 군사충돌 상황이 발생할 경우 고위 군사대화 채널이 없어 사태 수습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회담재개를 위한 합의중 주목되는 것은 미군대표의 '선임자 역할' 을 인정하면서도 유엔사측 4개국 대표가 동등한 발언권을 갖도록 한 점. 미군대표의 '선임역할' 대목은 얼핏 보면 북측이 요구한 '북.미 장성급 접촉' 을 인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실제로 이번 회담을 준비하면서 당초 4명의 유엔사측 대표와 통역이 나란히 앉을 계획을 수정해 4명의 장성이 앉도록 했다.

미군 수석대표가 5명중 가운데 앉게 될 경우 회담의 좌장 (座長) 으로 비쳐지는 점을 피해보려는 세심한 배려에서다.

형식상으로나마 한국군과 미군 장성이 공동대표인 듯한 모습을 보이자는 생각이다.

또한 회담 성격을 '정전협정의 틀내' 로 규정하고 의제를 군사문제에 국한시킴으로써 북한측이 이 회담을 다른 의도로 끌고가지 못하도록 했다.

물론 북한측이 이 회담을 한.미 양국의 기대와 다르게 끌고갈 것이라는 우려가 일부 남아있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은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장성급 대화를 통해 판문점이 '대결의 장소' 에서 '화해와 교류의 장 (場)' 으로 바뀔 것이라고 낙관한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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