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위험하다]7.홀대받는 문화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6면

지난 15일 한국고고학회 (회장 김종철) 는 '경주 선도산 보존' 에 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경주의 운명을 좌우할 소송사건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학회는 "선도산은 신라시대 유적이 집중적으로 분포돼 보존이 마땅하다" 며 "계명대가 동산의료원을 선도산 기슭에 신축하려는 계획은 백지화되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서울고등법원에 계류중인 이 소송은 계명대가 문화재관리국을 상대로 낸 '경주 선도산 발굴신청불허처분취소소송' .병원신축의 마지막 관문인 발굴허가단계에서 문화재위원회가 선도산에 건물을 짓는 자체가 문화유산 파괴라며 발굴불허를 내렸고 계명대측은 즉시 행정소송에 나섰다.

"적법한 절차를 따른 신축" 이라는 당당한 계명대의 태도 뒤에는 경주시의 무분별한 개발논리가 뒷받침하고 있다.

동국대 안재호교수와 경주대 정현교수 등이 최근 '경주의 문화재 피해실태 보고서' 를 발표하며 "84년부터 96년까지 경주에서 실시된 65건의 대형공사중 53건은 사전 지표조사 없이 강행됐다" 는 지적은 경주시 개발정책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매장문화재를 파괴시키는 것 못지 않게 발굴된 문화재의 관리도 문제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조유전)가 지난해 6월 각 대학박물관의 유물관리실태를 점검한 결과 점검대상 유물의 11%인 1백64점이 부식돼 재처리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장고와 전시실에 항온항습기가 없거나 가동되지 않는 문제점도 제시됐다.

그나마 올해부터는 인력과 예산부족으로 일제점검을 보류하고 문제상황이 드러날 때 연구소가 조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미흡한 유물관리는 지방국립기관도 마찬가지. 문화관광부가 지난해 11월 지방의 국립박물관.문화재연구소 등 11개 기관에 대한 기획감사에서 수장된 철제.청동제 금속유물 3만5천여점이 보존처리 미흡으로 원형훼손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유산에 대한 푸대접과 주먹구구식 행정은 무형문화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난해 11월29일 '전통문화의 전당' 이라며 문을 연 서울강남구삼성동 '서울 중요무형문화재 전수회관' 도 수시로 바뀌는 문화행정 탓에 '전통 천대의 표본' 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당초 계획은 15층 건물로 4백여평의 전시관까지 갖추는 것이었지만 예산부족으로 설계를 변경, 5층으로 잘린 상태에서 기둥과 계단만 15층 규모로 남아 전시공간이 줄어드는 등 제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개관 당시 "과다한 관리비를 낼 수 없다" 는 한국무형문화재기능보존협회 (이사장 정춘모) 의 반발도 아직 완전한 해결을 보지 못한 채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 정덕영) 과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무형문화재 보유자가 사망하면 맥이 뚝뚝 끊기는 상황도 연속되고 있다.

비인기 종목은 갈수록 이수자가 줄어든다. 화장 (靴匠).시나위.벼루장 등은 아직도 보유자를 선정하지 못했다.

새 정부가 들어선 뒤 지금까지 문화유산 관계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 것은 '지방이관' 등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몸집줄이기의 일방적인 적용이다.

문화유산의 가치가 예산절감등 돈문제로 취급되는 것에 우려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건무 학예연구실장은 "개혁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논리를 문화유산 보존에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 라며 "문화적 특수성을 감안한 현장의 소리를 최대한 감안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것" 이라고 말했다.

곽보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