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문가좌담]북한 권력개편 어디까지 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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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과 미국의 대북정책이 분명한 햇볕정책으로 선회하고 있다.

이 정책의 대전제는 김정일 (金正日) 체제가 붕괴하지 않고 지금의 위기를 극복한다는 판단이다.

일본은 김대중 (金大中)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중앙일보는 일본 중부 세토 (瀨戶) 내해 (內海) 의 군항 (軍港) 인 구레 (吳)에서 일본의 대표적 북한 전문가들인 게이오 (慶應) 대학의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 마이니치신문의 시게무라 도시미쓰 논설위원과 함께 이 문제에 관한 좌담을 가졌다.

김 = 94년 김일성 (金日成) 사망 후 계속된 북한의 권력개편은 끝났습니까.

오코노기 = 지난해 4월 군부의 대규모 인사이동이 단행됐고, 10월에는 김정일이 당 주석에 취임했습니다.

올해에 와서는 7월22일에 최고인민회의 선거를 한다고 공고됐으니까 일단 당과 정부의 체제개편은 끝났다고 봅니다.

9월9일 전후에 김정일이 국가주석에 취임할 수도 있다고 봐요.

시게무라 = 외교부와 통일전선부에 대한 사상검열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게 권력개편의 마무리 작업 같습니다.

체제개편으로 노인들은 명예퇴직되고, 정부의 실세자리는 젊은 세대가 차지하고, 연형묵 (延亨默) 이 총리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어요.

김 = 대외정책은 누가 주도합니까.

시게무라 = 김용순 (金容淳) 인데 그가 좌천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가 자리를 옮기고 연형묵이 총리가 되면 북한은 한국에 대해 더 체계적인 대응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 = 김용순은 왜 밀립니까.

시게무라 = 대일 (對日) 정책의 실패가 이유의 하나로 보입니다.

예를 들면 조총련 (朝總聯) 책임부의장 허종만 (許鍾萬) 이 김용순 라인인데 그의 바로 아래 있던 사람이 그의 바로 윗자리인 제1부의장으로 올라갔어요.

김 =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은 시기적으로 북한의 체제개편에 맞는 것입니까.

오코노기 = 그래요. 사실 일본에서는 처음부터 북한이 조기에 붕괴한다고 보지 않았어요. 지금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정권교체이면서 세대교체입니다.

김일성 사망 후 3년이나 4년의 시간이 걸리는 게 이상할 것 없어요. 김영삼 (金泳三) 정부와 김대중정부의 대북정책에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김영삼정부가 북한에 대해 아무리 포용정책을 썼다고 해도 체제를 정비중이던 북한은 신축성있는 대응을 할 수 없었습니다.

김 = 한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일본은 어떻게 봅니까.

시게무라 = 김영삼정부 때같이 이번에도 정책이 다시 바뀌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은 있습니다.

햇볕정책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김정일체제를 인정하고 북한을 도와주려고 하는 것인데 한국에서 반대가 생기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겁니다.

오코노기 = 한국의 새 정부가 햇볕정책을 취하면 북한이 당장 그것을 수용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어요.

시게무라 = 남한의 정책과 무관하게 북한의 기본입장이 있다는거죠.

김 = 김대중대통령은 새로운 정책으로 멀지않은 장래에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유도할 수 있다고 낙관하는데요.

시게무라 = 북한을 아는 입장에서 말하면 지금 북한이 원하는 것이 뭐냐에 대한 이해가 좀 부족한 게 아닌가 합니다.

김 = 그게 뭔데요.

시게무라 = 김정일체제가 살아남는 거지요. 한국은 북한의 경제가 어렵고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으니까 개혁과 개방만이 북한이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북한은 개방은 체제붕괴로 이어진다고 보는 겁니다.

오코노기 = 그래서 남북대화보다 4자회담을 선호하고, 4자회담보다 북.미 2자회담을 더 바랍니다.

김 = 6개국 선언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시게무라 = 4자회담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것이고 6자회담은 통일될 때 일본과 러시아까지 보장에 참여한다는 다음 단계의 구상 아닙니까.

김 = 일본은 대북정책의 속도를 어디에 맞춥니까.

시게무라 = 일본의 대북관계에는 기본전략이 없어요. 정치인들의 입장과 한국의 정책에 따라 흔들려 왔어요. 그러다가 지난해 10월 외무성이 방침을 바꿨어요. 그전까지는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는 무조건 찬성하는 입장이었는데 북한이 70년대에 10명 정도의 일본인들을 납치해갔다는 심증을 굳히고부터는 이 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으면 정상화교섭을 재개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참석자>

오코노기 마사오- 게이오대 정치학과 교수

시게무라 도시미쓰- 每日新聞 논설위원

진행: 김영희 본사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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