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정치적 접근 또 실패 부를 것 경제·환경 최우선 고려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거의 다 지어진 경북 울진군의 울진공항은 취항하려는 항공사가 없어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1999년 말 착공해 1300여억원이 투입됐으나 수요 부족 탓에 애물단지로 전락한 것이다. 이 때문에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울진공항을 포기하고 비행훈련원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울진공항은 처음 계획을 세울 때부터 승객이 극히 적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공사가 강행된 것은 당시 실세였던 정치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말이 떠돌았다.

지난해 정부가 건설계획을 취소한 전북 김제시 일원의 김제공항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2004년까지 공항부지를 사는 데에만 450억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2004년 감사원이 “수요가 부풀려졌다”고 지적하면서 사업은 사실상 중단됐다. 김제공항 건설 계획에도 유력 정치인의 압력이 있었다고 한다.

신공항 건설에서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정치적 접근을 배제하고 공항 경쟁력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동북아 허브공항포럼(회장 서의택 부산대 석좌교수)은 2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신공항 개발방향’이라는 주제로 국제세미나를 열었다. 이번 세미나는 동남권 신공항의 적정한 입지선정과 경쟁력 확보방안을 찾고자 마련됐다.

미국연방항공청(FAA) 소속 공항정책분석가인 로버트 사미스는 ‘외국의 대형 허브공항 재건설 경험’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세계적인 공항이 되려면 입지 선정에 있어서 정치적인 접근을 해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사미스는 구체적인 입지조건으로 ▶기존 공항의 공역(空域)과 분리 ▶대도시에서 40㎞ 이내 위치 ▶소음 등 지역의 환경적인 영향 최소화를 꼽았다.

미국 토목학회 공항환경·계획위원회의 윌리엄 파이프 회장은 ‘뉴욕-뉴저지 항만위원회 운영사례와 신공항 건설방향’이라는 주제발표에서 “공항 입지는 환경문제를 포함한 확장 가능성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파이프 회장은 “환경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경우 공항건설이 지연되고 장래 확장도 어렵게 돼 결국 공항의 경쟁력 상실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그는 소음과 공항 주변의 대기오염 문제도 공항 입지 선정의 중요 이슈로 제시했다. 파이프 회장은 “향후 공항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에어버스380과 보잉787 등 최첨단 대형 항공기들의 이착륙이 가능한 규모로 공항을 지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국가 공항정책과 신공항 개발방향’이라는 주제발표를 한 최치국 부산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동남권 신공항이 인천공항을 보완하는 동북아의 제2허브 공항이 되려면 확장이 쉽고 24시간 운영이 가능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해양부는 9월 말께 동남권 신공항 건설에 대한 타당성 검토 결과가 나오는 대로 세부 건설계획 마련에 착수할 방침이다. 예정대로 진행될 경우 신공항은 2025년께 완공이 가능하다. 

강갑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