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색채 思索人 유희영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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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 앞에 서면 보이는 것은 널디 넓은 색의 바다다.

짙은 군청이 깊은 바닷속처럼 침묵한 채 펼쳐져 있거나 투명한 오렌지색이 소리없이 빛을 낼 뿐이다.

색의 바다에서 맴돌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오게 되는 시선이 유일하게 부딪치는 곳은 캔버스를 걸쳐있는 엄정한 사선 (斜線) .이 사선을 놓고 작가 유희영 (柳熙永.58) 씨는 꽤 오랫동안 고민해 왔다.

'타협이 아닐까, 절충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아닌가' 하는 걱정에서다.

'색채의 사색인' 인 그로서는 보는 사람의 시선을 유혹할 장치를 만들었다는데 대한 자기 반성이기도 하다.

인간이 가진 순정무구한 감각을 추구해온 긴 모더니즘 회화의 역사는 많은 것들을 캔버스 뒤쪽으로 흘려 보냈다.

숭고한 테마나 화려한 장식.수사 (修辭) 는 형상과 함께 떠내려간지 오래고 모더니스트들이 대결하는 것은 기하학적 형태나 색 정도가 됐다.

국내에서 특이하게 색이 가진 내면적 추상성을 오랫동안 다뤄온 유씨가 근작에 담아온 고민의 조각을 펼쳐보이는 개인전을 열고 있다.

28일까지 갤러리현대에서 열리는 근작전에는 대작을 포함해 40여 점이 소개 중이다. 02 - 734 - 6111. 농담 변화없이 균질하게 펼쳐지는 색면은 뭐라 해도 단순해 보인다.

그러나 균질하게 펼쳐진 색면은 단순 속에서 복잡계의 얼굴을 감추고 있다.

표면 속에 가려진 색의 깊이, 색면 형식이 단어없이 말하는 내용, 차가운 기하학적 느낌 속에 담긴 절제된 감정 따위다.

사선에 대해서는 그는 이렇게 솔직한 말을 한다.

"모더니스트가 보는 형태의 골격은 분명 수직과 수평이다.

그러나 옥천에 있는 내 작업실 앞에 보이는 충청도 산이 옆으로 부드럽게 누운 능선은 나도 어쩔 수 없다. "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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