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한·미재계회의 '환란훈수'말말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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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 문제의 뿌리가 깊은 만큼 회복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제리 미첼 미국 대사관 상무공사) . "

월가 (街) 의 투자분석가들은 한국을 우려섞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뚜렷한 (개혁) 후속조치가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한국은 점검표를 갖고 실천여부를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피셔 클라크 메릴린치 아시아 태평양담당 회장) .

15일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 2층 그랜드셀라돈 볼룸에서 시작된 11차 한.미 재계회의에서는 이런 목소리들이 강하게 터져나왔다.

원탁에 마주앉은 양국 재계 인사들이 올해는 예년과 달리 '한.미 친선' 이나 '경제협력확대' 등 거창한 의제를 내걸지 않았다. 대신 양측 참석자들은 한국이 조속한 시일내 국제통화기금 (IMF)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제적 방안을 짜내는 데 매달리기로 했다.

이 때문에 양국 참석자들은 분과별 토론일정도 취소했다. 행사 진행자들은 '파격적인 일' 이라며 놀라워 했다.

지난 88년이래 서울과 워싱턴에서 번갈아 개최해왔던 재계회의 역사상 주요일정을 행사당일 바꾸기는 처음이기 때문이라는 것.

한.미 양측은 대신 ▶한국기업 회생을 위해 어느 정도까지 기업구조조정이 행해져야 하며 ▶한국정부가 시장개입을 중단하고 자유시장정책 노선을 택할 것인지 ▶과잉투자를 개선하기 위해 어떤 조치가 취해지고 있는지 등을 집중 토의했다.

기본적으로 IMF 구제금융 이후 한국 정부가 취한 '신속한 개혁조처' 에 대한 평가는 긍정적이었다.

제리 미첼 공사는 "한국은 경제회복을 위해 IMF와의 협약안을 능가하는 개혁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면서 "이런 구조조정 노력은 외환위기 이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빠른 속도와 규모로 진척되고 있다" 고 평가했다.

미 최대 철강사인 유에스 스틸 (USX) 토머스 어셔 회장은 "한국기업들의 뼈를 깎는 듯한 구조조정이 한창" 이라면서 "별다른 외적 충격만 없다면 올해말이나 내년초 경제성장이 회복될 것" 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정작 본론에 들어가자 개혁의 후속조치가 미흡하다는 우려와 함께 한국경제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조목조목 터져나왔다.

메릴린치증권 아태담당 피셔 클라크 회장은 "한국에서는 기업도산과 실업사태, 공장가동률 저하에다 주식시장 폭락 등의 부정적 요인이 있는데다 최근 노사정 (勞使政) 사회적 합의마저 허물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한국을 우려섞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한국정부가 (개혁을) 어떻게 실천할지 증거가 없다" 면서 "지난 3~5월중 외국인들이 한국투자를 관망하는 입장에서 6월들어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뀐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고 말했다.

와튼 & 게리슨 등 굴지의 법률회사 자문역인 라이오넬 올머 변호사는 " (한국의 경제) 개혁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게 문제" 라면서 "어떤 노력을 통해 실무차원까지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는지 한국정부에 묻고 싶다" 고 꼬집었다.

이런 과정에서 '풀 웨이스 리프킨드 와튼 & 게리슨' 법률법인의 북한투자전문가인 제롬 코언 변호사가 "올해 북한이 경제협력 사절단을 한국에 파견한 것이나 지난달 미국 2개 기업이 광업분야 투자를 협의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기계.금융 등의 분야에서 북한 공무원이 많이 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 말해 주목을 받았다.

한편 미국측은 향후 2년간 2백만달러의 장학기금을 조성,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인 유학생 5백명에게 오는 가을부터 지원할 계획이라고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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