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지금이 이래도 될 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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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주말 연휴에는 때아닌 행락인파가 산하를 뒤덮었다.

연휴 끝날인 일요일의 고속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을 무색케 하는 지체현상을 보였다.

동해안에는 수만명의 인파가 몰려들었고 제주에도 관광객이 넘쳐나면서 항공사는 특별기 10여대를 증편해야 했다.

선거일 - 현충일 - 일요일로 이어진 징검다리 연휴 4일을 지나면서 우리는 걱정과 자괴감을 금할 수 없었다.

과연 지금 우리가 이럴 때인가.

IMF체제 6개월을 맞은 지금, 우리는 아직 어떤 희망의 메시지도 얻지 못하고 있다.

비록 1차 환란 (換亂) 을 넘겼다지만 실생활의 고통은 지금부터가 시작일 뿐이다.

실제 실직자가 2백만명에 가깝고 대기업.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실질적인 구조조정은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언제 회사가 무너질지, 언제 나의 직장이 사라질지 모를 위기의 순간이 각일각 다가서고 있는 현실이다.

정작 올 겨울엔 어떤 경제한파가 불어닥칠지 예측할 수 없는 위기의 정점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떤가.

한때 자숙하고 경계하던 분위기는 자취없이 사라지고 때아닌 행락인파가 전국을 뒤덮고 있지 않은가.

지난 토요일은 현충일이었다.

텅빈 도심에 묵념시간을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지만 그날이 무슨 날인지, 묵념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른 채 현충일은 지나갔다.

국난의 위기를 몸으로 구했던 애국선열과 전몰용사를 추념하는 단 몇분을 기억하지 못하면서 국난의 위기경제를 구할 능력이 과연 우리에게 있는 것인가.

가정의 화목과 재충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너도나도 집을 나섰을 수 있다.

무조건 절약만이 위기상황을 넘기는 수단이 아님도 분명하다.

관광지 경기가 살아나는 것도 바람직스런 일이다.

그러나 백보를 양보해도 지난주말의 행락인파는 우리가 위기상황에 너무 둔감하고, 국민적 대처가 너무나 안이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만든다.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서, 위기 이후에도 지난날의 흥청망청 풍조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도 국민적 위기학습은 보다 철저하고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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