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거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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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호 14면

여자는 거울을 좋아한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거울과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동화 ‘백설공주’도, 그렇게 거울 보는 것을 좋아하고 거울과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 여자들의 이야기인지 모른다.

남편은 모른다

아내도 거울을 좋아한다. 거울이 집안 여기저기에 걸려 있다. 아내는 시원하고 호방한 성품대로 큼직한 전신거울을 선호한다. 물론 가방에 넣고 다니는 작은 손거울도 있다. 그러나 아내가 즐겨 쓰는 거울은 따로 있다. 휴대하기에는 좀 큰, 이 거울은 백설공주에 나오는 거울처럼 말도 한다. 주로 불평이지만 말이다. 그렇다. 아내의 거울은 남편이다.

사람은 자신을 예쁘게 비춰주는 거울을 좋아한다. 그렇다면 아내는 남편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 걸까. 알 수 없다. 아무튼 아내는 어디를 가든 이 거울을 갖고 다닌다. 그리고 수시로 거울을 보며 묻는다. 가령 세안을 한 뒤나 화장을 하고 난 뒤 또 외출하기 위해 옷을 고를 때면 아내는 남편 거울에게 묻는다.

“나 어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이 이런 것이다. 뜬금없이 자기가 어떤지 물어보면 대체 뭐라고 답을 해야 한단 말인가? 남편이 할 줄 아는 대답은 하나다.
“예뻐.”

아내는 불만이다. 남편이 늘 같은 대답을 하는 건 그만큼 성의가 없기 때문이다.
“됐어요. 제대로 쳐다 보지도 않고.”
매번 보는 얼굴인데, 굳이 다시 쳐다볼 이유가 뭐람.

어떤 질문은 그 자체가 고문이다. 어떤 대답을 해야 좋을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는 사람에게 계속 같은 질문을 하면서 대답은 매번 다르게 하길 강요하는 것은 고문이다. 남편도 아내가 원하는 대답을 빨리 해주고 싶다.
“예뻐.”
“건성으로 그런 건 다 알아.”

아내는 홱 돌아서서 벽에 걸린 거울 앞으로 간다.
부부는 서로에게 거울이다. 아내의 거울은 남편이지만 남편의 거울은 아내다. 돌아선 아내의 뒷모습이 비춰주는 남편의 모습은 이기적이고 만사 귀찮은 게으른 사람이다. 남편은 자세를 바로잡는다.

“뒤에서 보니까 확실히 알겠네. 예뻐. 뒤쪽의 단추가 포인트네.”
“정말?”
아내가 활짝 웃는다. 아내의 웃음을 보며 남편은 뭔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느끼지만 이미 늦었다. 아내는 옷장으로 가서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들을 모두 꺼내온다.

“그럼 이건 어때? 이건?”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아니다. 거울이 먼저 웃어야 한다. 남편은 울고 싶지만 아내를 향해 자신의 얼굴 근육이 만들 수 있는 가장 밝은 웃음을 짓는다.


<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h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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