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깊이 읽기] 보편 과학의 시대, 종교의 유통기한은 끝났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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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종교 전쟁
신재식·김윤성·장대익 지음
사이언스북스, 646쪽, 2만2000원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대한 종교재판 이래 무한논쟁이 벌어져온 과학·종교 사이의 새로운 만남을 모색한 이 책은 근래 이 분야 책 중 가장 주목할만하다. 과학철학·신학·종교학을 전공한 국내의 젊은 학자 셋이 지난 4년 동안 나눴던 대화(이메일+대담)를 집약한 이 책은 현단계 한국사회 지적 논의를 대표한다. 처음에는 오해했다. 리처드 도킨스의 유명한 책 『만들어진 신』을 본 따 만들어진 아류는 아닐까?

그게 아니었다. 『만들어진 신』이 영미권에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것은 2006년 크리스마스 전후. 하지만『종교 전쟁』의 세 저자가 종교와 과학을 주제로 새 책을 쓰자고 합의한 것은 그 1년 전이었다. 진용도 좋다. 무신론자·유신론자 그리고 불가지론자…. 양보는커녕 서로의 등을 돌리기 일쑤이겠지만 이 셋은 ‘친밀한 타자(他者)’다. 즉 서로의 학문적 지향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는지 기대 이상의 논의를 펼쳐 보이는 데 성공했다.

사실 과학·종교 사이의 긴장이 열전(熱戰)으로 번질 가능성은 한국이 미국 사회에 못지않다. 한국창조과학회는 “진화론만 교과서에 싣는 것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이라며 헌법 소원을 준비 중이다. 진화론이 조만간 법정에 서는 것이다. 그 이전 한 기독교 선교단원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피랍돼 인명이 희생되는 일도 벌어졌다.

문제는 그것이 타종교에 대한 경멸·오해를 부추겼지 그 이상으로 발전하지는 못한 점이다. 이 책은 그에 대한 답이다. 가장 균형 잡히고 자연과학의 정보량도 빵빵하다. 물론 과학에 대한 보편적 믿음을 기저에 깔고 있다. 이를테면 신학자 신재식은 창조과학이나 지적설계론은 사이비 신학도 못 되는 종교운동이라고 잘라 말한다. 종교학자 김윤성은 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르치려는 시도는 국교(國敎)를 따로 두지 않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에 위헌이라고 규정한다. 과학철학자 장대익은 “종교의 유통기간은 끝났다”고 선언한다.

진화론을 주장해 종교세력과 맞선 다윈을 서커스에서 공연하는 원숭이로 그린 풍자만화. 다윈이 뚫고 지나가는 원판에는 미신·무지·그릇된 생각이란 뜻의 프랑스어가 쓰여 있다.

보편적 가치로서의 과학을 옹호하는 이 책의 입장을 잘 보여주는 것은 다음이다. “현대과학의 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종교는 불교가 되었건, 기독교가 되었건, 신종교가 되었건 ‘신이라는 망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게 갈릴레오 종교재판 이래 역사의 상식이자, 그동안 과학·종교 사이에 강화된 군비경쟁에도 불구하고 새삼스러운 진실이다.

전공과 입장이 서로 다른 세 학자가 주고받은 13편의 편지와 10시간 좌담 기록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9·11 테러 이후 기독교 근본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 갈등에서 시작해, 우주와 생명의 기원, 인간 정신의 본질까지 들여다본다. 이메일이라는, 서로 주고받는 문장의 형식 탓인지 문장도 매우 부드럽다.

조우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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