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그룹들 '그룹字떼기' 붐…이미지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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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제 더 이상 우리를 그룹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 국내 재벌들이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그룹 명칭을 쓰지않고 오너들을 계열사의 대표이사로 등재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대기업을 본따 '우리도 엄연한 그룹' 임을 표방해온 중견.미니그룹들도 탈 (脫) 그룹을 선언하고 있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중견기업연합회 회장사를 맡고 있는 NK그룹은 지난 3월 그룹 경영조정실을 없애고 계열사인 NK전선 경영전략팀으로 관련기능을 옮겼다. 또 최현렬 (崔鉉烈) 그룹회장의 공식명칭도 NK전선 대표이사 회장으로 바꿨다.

신원그룹도 지난 1월 기조실을 폐지, 인사.신규사업의 기능을 계열사에 이관하고 홍보기능 등을 ㈜신원의 경영지원실로 옮긴데 이어 이달중 ㈜신원과 신원JMC, 광명전기와 신원인더스트리를 통합한다.

신원은 연내에 12개 계열사를 2~3개로 통폐합할 계획이어서 사실상 그룹이 사라지게 됐다. 96년 4월 그룹 선포식까지 가졌던 동원그룹은 올들어 인터넷 홈페이지와 회사로고 등에서 '그룹' 자를 뺀 데 이어 김재철 (金在哲) 그룹회장의 공식명칭도 모기업인 ㈜동원산업 회장으로 바꿨다.

한솔그룹은 지난 4월 그룹기획조정실을 폐지하고 인사.재무.전략팀을 해체했으며 홍보팀을 한솔제지로 이관했다. 또 그룹 총괄부회장과 정보통신.제지.금융 부문별 부회장직제도 폐지했다.

96년 5개 계열사로 그룹으로 출범했던 대교그룹도 최근 계열사를 ㈜대교와 대교출판 2개사로 통폐합, 그룹체제를 포기했다. 96년 4월 한국유리에서 이름을 바꿔 그룹으로 재출범했던 한글라스그룹은 지난 3일 최태섭 (崔泰涉) 명예회장의 장례식 등 공식행사에서 그룹이름 대신 ㈜한국유리로 표기하고 있다.

이밖에 동양화학.일진.벽산그룹 등도 올들어 그룹 기조실과 회장 비서실 등을 잇따라 폐지했다. 또 애경그룹은 장영신 (張英信) 회장의 공식명칭에서 그룹자를 빼고 애경 회장으로 표기하고 있으며 태평양.신동방그룹 등도 오너들을 각각 ㈜태평양.㈜신동방 회장으로 부르는 등 그룹호칭 버리기가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에 대해 "지난 96년부터 계열사를 많이 거느린 중견기업들사이에 발전의 상징처럼 그룹 출범이 유행했으나 최근 들어 '차입.부실경영' 의 원인으로 그룹식 선단경영이 지적되자 그룹이름 사용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고 설명했다.

홍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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