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화제]칸영화제서 주목끈 '신 작가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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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올해 칸영화제에서는 덴마크영화가 두 편이나 경쟁 부문에 올랐다.

'유로파' '킹덤' 으로 유명한 라스폰 트리에 감독의 '바보들' 과 신인감독 토마스 빈터버그의 '축하' 가 초청됐던 것. '축하' 는 비평가상을 수상했고 '바보들' 도 질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기자회견장에서 각국 기자들은 두 감독에게 '도그마 95' 에 관해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도그마 95' 란 한국기자들에게는 생소한 용어였지만 유럽에서는 꽤 화제가 됐던 일종의 선언문이다.

지난 95년 봄 라스 폰 트리에감독이 주도한 이 선언은 '신작가주의' 와 '영화제작의 민주화' 를 지향했다.

즉 감독의 개인적 취향을 억제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매체에 다가갈 수 있게 하자는 취지였다.

트리에 감독은 "60년에 시작된 뉴웨이브는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는데는 성공했지만, 출발부터 부르주아 낭만주의에 기초해 있어 더 이상의 변화를 추동하지 못했다" 고 평가하고 "오늘날 테크놀러지의 발전은 누구라도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만큼 이제 우리는 영화를 단일한 형태 (uniform) 로 만들어 영화의 민주화.대중화를 선도해야한다" 고 강조했다.

10개조항으로 이뤄진 선언문은 상당히 급진적이다.

^모든 장면을 핸드 헬드 (들고 찍기) 로 촬영할 것^스튜디오를 배제하고 현장촬영 (로케이션) 으로만 할 것^음악을 포함한 모든 사운드를 동시녹음으로 할 것^컬러 필름만 사용하고 특수조명을 쓰지말 것^필터나 광학 효과를 사용하지 말 것^영화의 시간이나 공간적인 배경을 현재.여기 (Here and Now) 로부터 너무 멀리 잡지 말 것^눈속임 연기, 즉 살인이나 무기를 쓰는 장면을 넣지 말 것^장르영화를 배제할 것^필름은 아카데미 비율의 35㎜ 만 사용할 것^감독의 이름은 크레딧에 올리지 말 것 등이다.

선언문은 각국의 유명감독들에게 돌려졌으나 서명에 동의한 이는 트리에와 빈터버그를 포함해 덴마크 감독 네명 뿐이었다.

'기본 취지는 좋으나 선언문대로 형식을 규제하다보면 미학적으로 협애해 질 우려가 있다' 는 게 주된 반대 이유였다.

그러나 선언문의 정신에 따라 만들어진 두 작품 ( '바보들' 은 디지털비디오로 찍어 35㎜로 전환했다) 이 칸영화제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관심을 표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앞으로 이 정신에 입각해 몇작품이 더 생산된다면, '도그마 95' 는 다른 나라에서도 논의의 중심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이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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