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기업경쟁력 돌파구로 떠오른 콜래보노믹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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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세계적 경기침체는 국내외 많은 기업을 생사의 기로에 서게 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가진 강점을 살려 새로운 산업에서 성장동력을 길러야 한다. 한국의 강점은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우수한 인적자원과 연구개발의 잠재력이 풍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까운 현상은 이것이 상용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30년간 국내 연구진이 항암제 개발 분야에서 총 937건을 특허 등록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다음 단계인 전임상(동물실험)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단지 3건만 항암제로 개발, 판매돼 제품화 성공률은 고작 0.3%에 불과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처럼, 우수한 기술력을 지니고 있음에도 상용화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그 경제적 가치는 ‘전무’한 셈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기업 경쟁력의 새로운 돌파구로 떠오른 협력의 경제학, 이른바 ‘콜래보노믹스’를 되새겨봐야 한다. 콜래보노믹스는 협력을 뜻하는 ‘콜래보레이션(collaboration)과 ‘이코노믹스’의 합성어로, 글로벌 기업들이 힘을 합쳐 개발비용 분담 등의 난제를 해결하고 서로의 가치를 올리는 윈-윈 파트너십을 말한다.

세계 굴지의 기업들은 지금 콜래보노믹스를 통해 세계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이런 글로벌 기업과의 투자 유치와 공동 연구는 국내 경제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국내의 우수한 연구개발 능력과 글로벌 기업의 강력한 네트워크 능력, 마케팅 노하우를 접목하면 훗날 우리에게 돌아올 과실은 지금보다도 몇 배 이상으로 커질 것이다.

바이오 제약산업도 바로 이 경우에 속한다.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이 국내 공공 연구기관과 파트너십 제휴를 하고 기초 단계에서 중단되던 글로벌 신약 개발의 한계를 뛰어넘어, 헬스케어 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연구기관 및 기업의 파트너십을 통해 기초연구와 임상시험을 결합한 형태인 ‘중개 연구’가 활성화되고 있다. 최근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헬스케어 산업은 단순한 요양산업이 아닌 첨단 기술과 접목한 HT(헬스케어 테크놀로지)로 무장해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한국 경제의 첨병이 될 수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의 보고서에 따르면 제약산업 투자효과는 전기전자 업종에 비교하면 1.8배, 수송기계 업종보다는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정부가 바이오제약과 신재생에너지 등 녹색산업을 신성장동력으로 선정함에 따라 유망 분야에 대한 외국 기업의 투자가 새로운 상생의 모델로 떠오르고 있다. 공공기관과 다국적기업 간의 투자 유치 및 협력 계약이 성과를 거두려면 계약 이후의 사후관리와 감독, 철저한 평가가 중요하다. 다국적기업의 투자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국내 기업의 몫을 뺏는다는 투의 반(反)외자 정서를 먼저 버려야 한다. 오히려 글로벌 기업의 국내 투자와 연구개발 분야에서 국내 기업과의 협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 사안이 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신성장동력 분야에서 글로벌 협력은 현재 경제위기 극복의 요체다. 세계적 다국적기업의 연구개발을 위한 유연한 환경을 만들어 제2의 경제 도약기를 활짝 열어야 한다.

안충영 중앙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