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운동 30년' 정순이 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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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나라 꼴이 엉망인데 이런 때일수록 번듯한 일꾼을 뽑아야지. 젊은이들, 꼭 투표해야 해요. " 선거를 하루 앞둔 3일 오전 서울송파구신천동 길가. 가랑비를 맞으며 올해로 칠순을 맞은 정순이 (鄭順伊.서울성북구삼선동) 할머니가 오가는 젊은층을 상대로 '기권방지 캠페인' 을 벌이고 있었다.

鄭할머니는 30년 가까이 여성유권자연맹 (회장 李春鎬) 의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이 단체에선 '최고참' 인 셈이다. "선거가 없으면 민주주의도 없지 않소. 또 많은 사람이 투표를 하지 않으면 선거는 무의미한 거고…. " 鄭할머니는 평범하지만 웬만한 기네스 기록보다는 더 값진 '기록' 을 갖고 있다.

지난 69년 여성유권자연맹이 출범한 이후 이 단체에서 주관하는 거의 모든 선거 캠페인에 참여한 것이다. 지금까지 동참한 강연회와 주요 캠페인만 줄잡아 50여번이나 된다.

특히 92년부터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 출범과 동시에 여성유권자연맹이 회원단체로 가입한 이후에는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 鄭할머니는 물론 투표권을 갖게 된 이후 빠짐없이 주권을 행사해 왔다.

鄭할머니가 여성유권자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같은 교회에 다니며 친하게 지내던 이웃집 아주머니가 '좋은 모임이 있다' 며 가입을 권유하면서부터.

처음엔 단순한 여성들의 권익을 위한 모임이려니 생각했지만 '한쪽 목소리에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투표권 행사를 홍보한다' 는 여성유권자연맹의 방침이 마음에 들어 그때부터 가장 '부지런한 회원' 이 됐다. 여성유권자연맹 근무자들은 鄭할머니를 '의리의 돌쇠' 라고 부른다. 시원시원하게 맡은 일을 잘 해낸다는 뜻에서다.

연맹의 재정상태가 한창 쪼들리던 70년대는 인천에서 젓갈을 직접 떼다 팔며 바자를 열어 연맹의 살림살이 지원에 나서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열심히 활동해온 탓일까. 鄭할머니에게 요즘 후배들이 영 눈에 차지 않는다. 옛날만큼 열의가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경제가 안좋은 때문인지 시민단체들의 활동이 점점 위축되는 상황도 안타깝다고 했다.

이날도 鄭할머니는 집에 있다가 신천동에 있는 연맹 사무실로 나가 비가 온다는 이유로 예정된 기권방지 캠페인을 망설이고 있는 회원들을 다그쳤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건 요즘 젊은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투표에서 멀어진다는 점이야. 투표하더라도 누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찍는 것 같고…. " 鄭할머니는 물론 이번 선거에도 온 가족을 이끌고 '신성한 한 표' 를 행사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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