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구조조정]문제점·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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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종합금융회사와 달리 부실한 은행을 문닫게 할 경우 국민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너무 크다는 우려 때문에 인수.합병 (M&A) 과 대형화를 통한 은행 구조조정이 적극 모색되고 있지만 이 또한 문제가 없을 수 없다.

◇ 조직.인원 축소 = 우량은행간이든 우량.부실은행간이든 은행 합병의 1차 목표이자 가시적 결과는 대규모 감원과 조직감축일 수밖에 없어 종업원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업무가 엇비슷한 은행들끼리 합쳐지면 적게는 30%, 많으면 절반까지 인원을 줄이지 않을 수 없을 것" 이라고 추산했다.

이미 올들어 은행권의 인원감축 규모는 1만명에 가깝고 줄어든 은행점포수도 수백개에 달하고 있지만 합병후 중복 점포와 부서를 통폐합하고 인원을 정리할 경우 은행원들의 대량 추가 실직사태로 이어질게 뻔하다.

◇ 이질적 은행문화 = 과거 70년대 서울.신탁은행의 합병 사례를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름대로 오랜 독자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대형은행들이 합병후 각자의 조직문화를 얼마나 잘 융화해 나갈지도 큰 관심거리다.

1백년 안팎의 연륜을 자랑하는 조흥.상업은행 등 일부 선발 시중은행들은 근거없는 피합병 소문에 대해 "부실채권이 졸지에 급증해 국제결제은행 (BIS) 자기자본이 8%를 밑돌고 있다고 합병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면서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 예금자 보호문제 = 우량은행에 인수되는 부실은행에 돈을 넣어둔 사람들은 계약이전 방식으로 자산.부채가 모두 우량은행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우려할 것이 없다는 게 정부측 설명이다. 하지만 부실은행을 인수한 금융기관이 동반부실화해 예금지급이 어려워질 경우 문제는 심각해진다.

진통을 거듭하고 있는 예금자보호법 시행령이 이달중 개정되면 적어도 1억원 이상의 고액 예금가입자들은 이자를 보호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 부실채권 정리비용 = 금융기관의 정리대상 부실채권은 1백조원이며 이중 50조원은 금융기관 손실이 되고, 25조원은 금융기관 자체정리가 가능하며 나머지 25조원을 성업공사가 매입해 정리하는 쪽으로 일이 추진되고 있다.

전반적인 금융구조조정에 소요되는 채권발행 규모는 모두 50조원으로 이를 시장에서 소화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로 인해 금리가 급등하고 회사채 시장을 잠식해 자금조달을 어렵게 하는 '구축효과' 가 우려된다.

◇ 시너지 효과 = 시티그룹 등 세계 주요 은행들간의 합병은 비용감축과 생산성 향상으로 대표되는 시너지효과를 통해 경쟁력을 제고하려는 시도다.

현대경제연구원 천일영 (千一英) 연구위원은 국내 금융기관 합병시 총자산이익률 (ROA.용어한마디 21면) 을 분석한 결과 "국내 우량은행 몇몇을 합치면 국제경쟁력을 지닌 금융기관을 탄생시킬 수 있다" 는 낙관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하지만 영업규모와 업무내용이 엇비슷한 우량.부실은행 합병시 순기능이 얼마나 크게 발휘될지는 미지수다.

금융연구원 김병연 (金炳淵) 연구위원은 "대형화만으로 경쟁력이 갖춰지는 것은 아니며 구미 (歐美) 의 경우 우량은행이 부실은행 인수로 몰락한 경우도 많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국내 시중은행을 소매중심이다, 기업금융 중심이다 분류하지만 실상 다점포 전략과 외형 키우기에 주력해 온 결과 시너지를 창출할 다양성을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은행 전산망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은행별로 독자구축해 호환성이 떨어지는 금융전산망의 통합작업도 합병시 만만찮은 부대비용을 발생시킬 것이라는 전망이다.

홍승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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