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NLL침범은 침묵하고 보고 여부만 따지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 경비정의 무선(핫라인) 내용을 보고치 않은 사건이 확산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국민과 대통령에게 하는 군의 보고는 정확성이 생명"이라며 추가조사를 지시했다.

우선 북측 무선내용이 합동참모본부(합참)에 보고되지 않은 것은 잘못된 것이다. 북방한계선(NLL)이라는 민감한 지역에서 북한 경비정의 무선내용을 해군 지휘부가 무시한 것은 매우 잘못된 판단이었다. 북측 무선내용이 누락됨으로써 합참이 '북한 경비정은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는 허위 발표를 했으니 이 부분에 대해선 군 내부에서 관련자들을 엄중히 문책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을 둘러싼 청와대나 여권의 대응 방식에도 큰 문제가 있다. 이 사건의 본질인 북한 군함의 침범이라는 사실은 간 곳이 없고, 보고가 됐느냐 안 됐느냐는 지엽적인 문제가 마치 큰 문제인 양 사태가 번지고 있다. 우리 내부에서 보고가 됐느냐 안 됐느냐의 문제와,북한이 NLL을 침범한 사실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문제의 핵심은 북한의 침범이다. 국방부는 당연히 먼저 이 문제를 규명하고 그 이후 왜 무선교신 보고가 누락됐는지 조사해야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모습은 국방부나 청와대가 우리 군의 잘못만 찾으려 애쓰고 있는 듯이 보이니 이해가 안 간다.

국방부가 '북측 경비정의 무선내용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자마자 이를 공개하고 마치 우리 군에 잘못이 있는 것처럼 비춰지게 한 것도 잘못이다. 북한의 교신내용이 무엇이었느냐를 규명하기도 전에 마치 북한은 의무를 다하고 우리 군이 성급하게 대응한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해군은 당시 상황상 '무시할 만한 내용'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군의 얘기를 먼저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중국 어선'이라는 북측 무선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이미 드러나고 있다.

특히 보고 누락을 마치 대통령의 군 통수권에 대한 도전으로 확대해 몰고 가려는 것도 잘못이다. 여당 의원이 "현 준장.소장들은 군부 정권에서 지도력을 키워온 사람들"이라고 군을 매도하니 제 정신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