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농림부 비자금 파문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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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감사원이 지난 연말 예산실태 감사에서 적발한 산업자원부 (당시 통상산업부) 와 농림부의 '딴 주머니' 는 정부부처의 관행이 된 비자금 실태를 말해 준다.

산자부와 농림부의 '딴 주머니' 를 비자금이랄 수 있는 것은 이 돈을 정상적인 예산회계법상의 절차를 무시하고 부처가 마음대로 써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더욱 이번 경우가 걱정되는 것은 감사원의 지적을 받은 관계자들이 "이게 뭐 우리 부만의 일이냐. 사사로이 쓴 것도 아닌데. 논란의 여지가 있어 지난해 총리가 정리에 나서기도 했는데" 라며 '죄의식' 을 갖지 않는 점이다.

예산은 세금으로 거둔 국민의 돈을 정부가 대신 사용하는 것이기에 철저한 감시와 심의절차를 법으로 정하고 있다.

국회가 심의하고, 감사원이 다시 집행실태를 감사하고, 예산담당부처인 재정경제부나 예산청이 편성과정에서 사전심의하는 절차 등은 모두 국민의 돈이 합리적으로 투명하게 쓰이게 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산자부와 농림부의 '비자금 조성' 은 법정신을 정면으로 무시한 것이다.

산자부의 경우 지난 90년부터 97년까지 공업기반기술 개발사업에 출연했다가 환수된 예산 2백31억여원을 국고에 반납하지 않고 자신들이 '공업기반기술 개발사업 운영요령' 이라는 내규를 만들어 멋대로 사용해 왔다.

농림부 역시 같은 방식으로 간척지 매각대금 등을 국고에 반납하지 않고 임의로 사용해 왔다.

산자부나 농림부는 이에 대해 "관행적으로 해오던 일이고, 또 당초의 목적에 맞춰 사용했다" 고 해명한다.

그러나 감사원 관계자는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다고 불법적인 일을 계속한다는 것은 준법정신의 마비" 라며 "당연히 시정했어야 할 일" 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구체적으로 사용내역을 밝힐 수는 없지만 당초 목적대로 사용했다는 부분도 인정하기 힘들다" 고 꼬집었다.

예컨대 산자부에서 기술개발을 위해 배정된 예산이기에 관련사업에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예산인 만큼 원칙상 재경부에 반납해 필요하면 다시 예산당국의 승인을 받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한나라당은 철저한 진상파악을 요구하고 있다. 단순한 정치공세가 아니라 국법확립 차원에서 접근해 관행이 된 딴 주머니가 시정되도록 해야 한다는 얘기다.

오병상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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