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수산유통공사 한국물산 일본 법인 파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도쿄 = 이철호 특파원]농수산물유통공사의 자회사인 한국물산의 일본 현지법인이 51억엔 (약 5백10억원) 의 부채를 처리하지 못한 채 회사를 청산키로 결정하면서 일본 채권은행들이 정부에 채무변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한국물산은 27일 "지난해 대만산 돼지고기 수입사기사건으로 입은 31억엔의 손실을 감당하기 힘들어 청산 절차를 밟기로 결정했다" 고 밝혔다.

농수산물유통공사가 한국산 농수산물의 수출을 위해 지난 70년 16억엔을 출자해 설립한 한국물산은 지난해 3월 대만산 돼지고기를 일본시장에 수입하다 전염병 파동과 중간 유통상의 사기사건에 휘말려 31억엔의 손실을 입었다.

한국물산은 또 부동산 과잉투자로 경영이 크게 악화됐다.

한국물산은 현재 한국계 5개 은행에 36억5천만엔, 일본계 5개 은행에 14억9천만엔의 부채를 안고 있다.

일본 금융기관들은 대출금의 70%가량에 대해 부동산 담보나 농수산물유통공사의 지급보증을 확보하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는 지급보증이 없는 신용대출에 대해 "한국물산은 주식회사 형태로 진출한 현지법인이어서 서울 본사가 경영 책임을 질 법적인 이유가 없다" 고 입장을 밝혔다.

또 한국물산이 한국산 농산물이 아닌 대만산 돼지고기를 수입하다 일본인 수출대행업자의 사기에 걸려 거액을 날린 만큼 국민 세금인 정부예산으로 부채를 변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물산과 거래해온 사쿠라.스미토모 (住友).다이이치간교 (第一勸業) 은행 등의 지점장들은 주일 (駐日) 한국 대사 앞으로 보낸 편지에서 "한국 정부를 믿고 한국물산에 자금을 지원한 만큼 정부가 대신 변제해 줄 것" 을 요청했다. 일부 은행의 지점장은 "변제해주지 않을 경우 한국 정부의 채무불이행과 같은 사태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 며 "한국물산에 대한 대출금이 떼인다면 무엇을 믿고 한국 기업들에 대출해 주겠는가" 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물산 청산을 계기로 일본 은행들의 대출금 상환 압력이 노골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주일 (駐日) 한국기업연합회도 대사관측에 "일본에 진출해 있는 다른 한국 기업에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정부가 적절한 대책을 세워줄 것" 을 요구하는 건의문을 전달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