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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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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2004년 5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NHK를 비롯한 일본의 주요 방송사들에 공문을 보냈다. “귀사가 무단 사용 중인 조선중앙TV의 영상물에 대해 분당 500달러씩의 사용료를 징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때까지 일본 방송사들이 정식 계약 없이 위성을 통해 수신한 북한 방송 화면을 사용해 오던 관행에 쐐기를 박겠다는 의도였다. 돈도 돈이지만 ‘북한 때리기’ 일색인 일본 방송의 북한 보도를 조금이라도 줄여 보자는 속셈도 깔려 있었을 터다.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마저 비난 또는 희화화하는 보도는 어쨌든 막아야 할 것 아닌가.

하지만 조총련의 이런 공세도 일본 언론들의 과열 경쟁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북한의 ‘북’자만 들어가면 뭐든지 뉴스거리가 되는 현상은 2002년 일본인 납치가 사실로 확인돼 반북 감정이 들끓게 된 이후 두드러졌다. 끈질긴 취재와 인력·물량 투입으로 굵직한 특종을 터뜨린 사례도 적지 않지만 명백한 오보나 감정이 개입된 과장 보도도 양산됐다.

몇 해 전 한 지상파 민영방송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두 사람을 북한에서 촬영한 사진을 탈북자로부터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사진의 주인공은 한국에 살고 있는 또 다른 탈북자들이었고, 촬영 장소도 북한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사례금에 눈이 먼 제보자에 당한 것이다.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 주위에 있다 사진이 찍힌 한국 공무원을 북한의 대일 공작원이라고 지목해 보도한 적도 있었다. 근거가 취약하거나 비약이 심한 보도도 많다. ‘북한의 원자력 시설 근무자는 방진 장비 없이 맨몸으로 일한다’는 내용이 방송되기에 눈여겨봤더니 증언자로 나온 탈북자는 북한에서 핵 폐기물이 아닌 일반 쓰레기 처리를 담당한 환경미화원에 지나지 않았다.

지난주 모 방송이 김정일 위원장과 외모가 유사한 한국 남성의 사진을 북한의 차기 지도자 김정운이라고 보도한 사례는 가위 오보의 압권이었다. “김정남 망명 준비 중”이라고 한 신문이 보도하자 다음 날 당사자가 TV 인터뷰에 나와 부인한 일도 있었다. 돌출행동을 즐기는 김정남이 언젠가 진짜 망명해 오보가 특종으로 바뀔지도 모르지만…. 하기야 남의 허물을 나무랄 처지는 아닌 듯하다. 북한 관련 최대의 오보인 1986년의 ‘김일성 사망’ 보도는 한국 언론의 작품이었다. 필자를 포함한 한국과 일본의 동료 기자들에게 고합니다. 정신 바짝 차립시다.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