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하락행진]미국·일본 금리버티기에 엔화 표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최근의 엔화 약세는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이 "엔화 환율을 달러당 1백50엔까지도 용인하겠다" 고 발언했다는 보도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하지만 근본 원인으로는 ^미.일의 금리 격차^일본 금융기관의 막대한 부실채권^아시아 경제위기로 인한 일본 경제의 타격 등 양국간의 실력차가 지적된다.

일본 자금이 저금리를 피해 해외로 빠져나가는 것도 엔화 약세를 부채질하고 있다.

외환전문가들은 이런 추세라면 달러당 1백40엔대로 엔화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달러당 1백50엔을 넘는다는 전망치도 내놓고 있다.

◇일본의 시각 = 연말쯤 엔 - 달러 환율이 반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점친다. 일본내 경제분석가들은 연간 2천억달러에 이르는 미국의 무역적자 확대 추세에 주목하고 있다.

노무라종합연구소의 다카오 기이치 (高尾義一) 는 "미국이 언제까지 거액의 무역적자를 버텨낼 수 있을지가 환율 반전의 관건" 이라고 내다봤다.

야마다 신지 (山田伸二) NHK 해설위원은 "11월 미 의회 중간선거가 끝나고, 달러에 버금갈 유로화의 환율이 올해말 결정되면 핫머니의 일극 (一極) 집중현상이 완화될 것" 이라며 "천정에 달한 미 주가와 달러강세가 그때부터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고 예상했다.

경제분석가 J 우드워즈도 "일단 달러당 1백40엔까지 갔다가 내년쯤 1백엔 수준으로 반전될 것" 이라고 말했다.

환율 전망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미.일의 금리인상 여부다. 특히 일본이 내수확대보다 엔화 약세 저지가 급하다고 판단해 미국에 앞서 금리를 인상할 경우 엔화는 빠른 속도로 평가절상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입장 = 엔 약세는 미국으로서도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우선 엔 약세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더 키운다. 3월중 무역적자는 1백30억달러였다. 그중 대일 (對日) 무역적자가 58억달러나 된다.

낮은 실업률 (4월 4.2%) 속에 경기가 호황이어서 아직은 정치적 불만으로 이어지진 않고 있지만 무역적자는 '시한 폭탄' 과 같다.

'강한 달러' 정책을 표방하는 로버트 루빈 미 재무장관은 지난달 엔화가 달러당 1백30엔선까지 떨어졌을 때 일본 정부의 시장 개입에 대해 매우 이례적으로 협조 의사를 비쳤다.

또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 는 최근 "아시아 위기를 부채질하지 않기 위해 금리 인상을 하지 않겠다" 고 결정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 이상 적극적으로 엔화 환율 유지를 위해 나서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월가의 분석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미국은 일본이 환율을 조정해서가 아니라 근본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아시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도록 압력을 넣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달러를 약세로 몰아 표를 잃는 일은 하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워싱턴.도쿄 = 김수길.이철호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