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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배에 탈 수 있는 자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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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북역은 평소 공공연히 폭력을 행사하는 아랍계 청년들의 근거지다. 이곳에서 무임 승차하려던 아랍계 청년들이 이를 제지하는 역무원을 집단 구타하면서 사건은 시작됐다. 경찰이 출동하자 평소 이 부근을 배회하던 청년 수백 명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경찰마저 마구 때리고 지하철역 집기를 닥치는 대로 부쉈다. 지하철도 멈춰 서게 했다. 추가 병력이 도착한 뒤에도 한데 엉켜 난투극이 벌어졌다. 하룻밤을 꼬박 새우고 난 뒤 해산하기는 했지만 이민자 사회는 들썩였다.

사르코지는 앞서 내무장관 재임 시 말썽 많은 이민자들을 향해 “관용은 없다”고 선언했다. 불만을 품은 이들은 선거 기간 내내 ‘사르코지 타도’를 외쳤고, 일부 좌파가 연대해 안티 사르코지 정서를 부추겼다. 이민자 문제는 사르코지의 아킬레스건이었고, 좌파에게는 더 없이 좋은 공격 목표였다. 그러던 차에 선거를 눈앞에 두고 민감한 사건이 터진 것이다.

모두가 사르코지를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그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러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불법을 서슴지 않고 저지르는 사람들과는 민주주의라는 배에 함께 탈 수 없다.” 한 표가 아쉬운 그였지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원칙론을 꺼내 들었다.

현지 언론은 물론 사르코지의 참모조차 강경 대응은 악재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다수의 프랑스 국민들은 사르코지 입장에 지지를 보냈고, 지지율 격차는 다시 벌어졌다. 불안해하는 국민에게 믿을 만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심어준 덕분이었다. 이 같은 사르코지 스타일은 집권 2년을 넘는 동안 꾸준히 나타났다. 독선적이라는 비난도 있지만 그의 원칙과 명분은 중요한 고비에서 정치력의 원천이 됐다.

지난해부터 우리 사회에는 ‘민주주의’라는 배에 함께 탈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나 자주 눈에 띈다. 스스로 민주주의와 동떨어진 말과 행동으로 일관하는 그들은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쳐대 헷갈리게 한다.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당장 죽기라도 하는 듯 국민을 겁주고 선동했던 사람, 전직 대통령 자살로 정치 장사하려는 사람, 한국 기업 제품 사지 말라고 해외에까지 악쓰는 사람, 경찰에 새총 쏘고 죽창 휘두르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몇몇 때문에 지금 대다수 국민은 혼란스럽다. 더욱 불안한 건 이들에게 떼밀려 이리저리 쫓겨 다니기만 하는 정부의 대응이다. 정부는 이제라도 그들과 한 배를 타지 않겠노라고 선을 그어야 한다. 폭력과 선동을 일삼는 그들에게 국가가 할 수 있는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을 부정하려는 그들을 태우려다 국민 모두를 물에 빠뜨리는 어리석은 정부가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전진배 파리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