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새로운 시작’ 이란서 막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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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분석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중동 화해정책이 뜻하지 않은 벽에 부닥쳤다. 이란 대통령 선거 결과 때문이다. 박빙의 승부가 될 것이란 예상과 달리, 개표 결과는 반서방 보수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개혁파인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를 압도적 표차로 누른 것으로 나왔다. 14일 AP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아마디네자드가 62.6%를 득표했다. 무사비는 절반 수준인 33.8%를 얻는 데 그쳤다.

이란 대선 결과에 불만을 품은 반정부 시위대가 13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버스에 불을 지른 가운데 한 시민이 손가락으로 항의 표시를 하고 있다. 12일 실시된 대선에서 보수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다. [테헤란 AFP=연합뉴스]

그러나 개표 직후 부정 선거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면서 수도 테헤란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는 등 이란 정국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뉴욕 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개표 결과가 투표가 끝난 지 두 시간 만에 나온 데다 일부 개표소에서는 무사비 측 참관인 입장이 허용되지 않았다.

개표 후 침묵을 지켰던 무사비 전 총리도 선거 무효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는 14일 자신의 웹사이트에 올린 성명에서 “선거 결과를 무효로 해야 한다는 공식 요구를 헌법수호위원회(the Guardian Council)에 제기했다”며 “이란 국민은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전국적인 시위를 계속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도 이런 움직임에 동조하고 나섰다.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은 14일(현지시간)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란 선거에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승리가 선언된 데 대해 엄청나게 많은 의문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반미 정책을 고수해 온 아마디네자드가 대미 강경노선을 더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날 당선 후 첫 기자회견에서 “감히 이란을 공격하려는 일부 국가는 그런 움직임에 대해 깊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핵 개발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그는 “핵 이슈와 관련한 협상은 역사가 됐다”며 서방 측과 우라늄 농축 중단 협상을 계속하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을 밝혔다. 이란 당국은 개표 결과 발표 이후 무사비를 지원했던 이슬람이란참여전선(IIPF) 등 개혁파 지도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에 나섰다. 내부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의도다. 국제 사회는 아마디네자드가 국내의 개혁·개방 열기를 억누르면서 서방에 대해선 과거의 초강경 노선으로 복귀하려는 포석을 두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이 예전처럼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국은 중동 안정에 이란의 도움이 필요하고, 이란은 미국의 경제 제재 완화와 교류 확대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양국이 일정 부분 타협을 시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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