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더 꼬여가는 인도네시아사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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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혼미 (昏迷) 를 거듭하는 인도네시아 사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수하르토 대통령의 19일 대 (對) 국민담화가 실망으로 끝났다.수하르토 대통령은 오는 2003년까지인 자신의 임기를 모두 채우지는 않겠다는 모호한 대답으로 사임요구를 사실상 거부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헌법 준수를 촉구하면서 그렇지 않으면 내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수하르토 대통령의 이번 담화는 사태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상황은 그의 장기집권을 뒷받침해 온 헌법의 준수로 해결하기엔 너무도 심각하기 때문이다.약탈.방화 등 극한행동은 고개를 숙였지만 일시적 소강 (小康)에 불과하다.

담화 내용에 실망한 국민들이 다시 거리로 뛰쳐나올 것이고 폭동이 재발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20일 '국민 각성의 날' 시위를 하루 앞둔 19일 수천명의 대학생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일부는 의사당 지붕에서 농성중이다.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더 이상 수하르토체제를 원치 않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32년동안 계속된 수하르토체제 아래서 인도네시아는 어느 정도 경제발전을 이뤘지만 그 대신 국민들은 정치적 압제를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외환위기로 경제에 대한 희망마저 기대할 수 없게 되자 마침내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특히 수하르토 일족의 엄청난 치부 (致富)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이같은 전개과정은 후진국 개발독재의 전형 (典型) 이다. 경제개발을 앞세워 정치적 자유를 유보당했던 국민들이 경제적 난관에서 마침내 정치투쟁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같은 과정을 4.19와 6.10항쟁을 통해 직접 체험했으며, 이런 식의 담화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로선 수하르토 대통령이 사태를 바로 보고 국민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사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길이며, 인도네시아 사태의 여파를 직접 겪게 될 주변국들을 안심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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