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장과 통합, 국정의 허리를 꼿꼿이 세워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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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호 02면

피트니스 센터를 찾는 지치고 피곤한 회원들에게 트레이너들이 입버릇처럼 주문하는 게 허리를 곧추세우라는 것이다. 허리를 곧추세우는 것만으로 어른의 키는 2~3㎝ 키울 수 있다. 허리를 곧추세우면 자동적으로 가슴이 펴지고 어깨가 반듯해져 그 위에 얹혀진 4㎏가량의 머리 하중을 골고루 받아낼 수 있다. 튀어나온 배를 방치한 채 허리를 구부정하게, 가슴을 안으로 모은 상태에서 머리 무게의 하중은 가련한 목 근육에 쏠리게 된다. 늘 뒷목이 뻣뻣하고 어깨가 아픈 건 대체로 이 때문이다.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 이명박 정부가 생기를 찾으려면 허리, 곧 척추를 곧추세워야 한다. 정권의 척추는 국정 기조다. 척추는 몸에 하나밖에 없는 대체 불가능한 장기다. 존재의 정체성이자 힘의 근원이다.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 힘의 근원은 무엇인가. 2007년 12월, 그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킬 때 한국인이 기대했던 갈망이다. 그 갈망을 이명박 대통령은 채워주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의 갈망은 성장과 통합이었다. 성장과 통합은 시대정신이다. 이명박 정권의 국정 기조는 성장과 통합 위에 성립됐다.

노무현 정부의 국정 기조는 분배와 정의였다. 그러나 5년이 지난 뒤 분배 문제는 더 악화됐고, 정의는 독한 분열을 낳았다. 유권자들은 분배와 정의가 말로 실현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정권을 교체했다. 국정 기조는 분배와 정의에서 성장과 통합으로 바뀌었다.

지난해 촛불정국, 올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정국을 거치면서 나라의 허리가 휘고 민심의 가슴이 오그라들고 경제의 어깨가 축 처져 있다. 이념의 무게는 온통 가련한 정치에 쏠려 있다. 순간 모면과 망각 효과, 반사이익에 기댄 국면 전환술 같은 것으로 병든 이념정치는 고쳐지지 않을 것이다. 당선자 시절, 잠깐 보였다 사그라졌던 성장과 통합의 국정 기조를 꼿꼿이 세우는 일, 이게 이명박 정부도 살고 나라도 살고 반대파도 사는 길이다. 국정 기조를 바로 펴 나라 전체에 활기가 돌 때 병든 이념정치는 고립되고, 전염력은 약화될 것이다.

성장의 국정 기조는 무엇인가. 6월 국회를 열어 미디어법,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법 같은 성장 법안을 통과시키고 4대 강 개발, 새만금 개발 같은 성장 정책을 신속히 집행하는 일이다. 통합의 국정 기조는 무엇인가. 노무현 정권의 코드 인사를 답습하는 것과 같은 측근 인사, 김대중 정권의 DJP 공동 정치만도 못한 박근혜 세력에 대한 좁쌀정치, 김영삼 정권의 보수대연합만도 못한 이회창 세력에 대한 외면 정치, 민주당·좌파 세력도 엄연한 국민인데 이들을 적을 대하듯 하는 배제 정치. 이런 것들이 이명박 정부의 통합 성적에 낙제점을 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민주당 이강래 원내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 기조를 바꾸고 운영 방식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국정 기조는 그대로 유지돼야 한다. 문제는 국정 기조가 아니라 보다 철저하게 관철하지 못한 운영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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