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자형 더블딥을 조심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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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호 30면

일본 정부 관계자들과 얘기해 보면 체념의 몸짓이 느껴질 때가 많다. 디플레이션에다 미약한 성장률, 정치적 혼란까지 겹쳐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현재 일본 경제는 세계 많은 나라들에 나쁜 본보기가 되고 있다.

최근 만난 오타 히로코 전 경제재정상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최악은 넘겼지만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선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 나쁜 소식은 일본이 V자형으로 회복하는 대신 W자형 더블딥(이중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오타의 주장이다.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일본식 장기불황이 미국 등으로 번질 것 같진 않다.

천문학적 돈을 쏟아부은 경기부양책은 어쨌든 효과를 내고 있다. 제2의 대공황이 올 것이란 우려는 오히려 심각한 인플레를 걱정하는 목소리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안심할 수 없다. 경기 사이클이 W자형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최근 베어마켓 랠리(증시의 약세장에서 주가 반등)를 둘러싼 논란도 이와 관련이 깊다. 주가 반등은 일시적 현상에 그치고, W자형 경기 사이클은 앞으로 몇 년간 이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최악은 지났다’며 경기회복의 조짐을 말하던 사람들에겐 큰 충격이 될 것이다.

워싱턴에서 베이징까지 각국 정부는 위기의 증상을 완화하는 데 급급하고 있다. 위기의 원인을 치료하려면 아직 멀었다. 돈을 쏟아붓는 것은 일시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다. 이제는 규제를 개편하고 경제 시스템을 새롭게 하고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할 때다. 시장의 신뢰를 위해선 정부와 감독당국의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일본은 과거 강력한 조치를 회피했던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그 결과 해외 수출시장의 변화에 극도로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2000년대 초반 일본 경제의 반짝 회복세는 건강한 성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훨씬 많은 정부 부채와 제로 금리의 덕분이었다.

모건 스탠리 아시아의 스티븐 로치 회장은 지속적으로 세계 경제가 W자형 더블딥에 빠질 위험을 경고해 왔다. 그는 “현재로선 전통적인 V자형 회복론은 동화 속 세상 같은 얘기”라고 말했다.

경제위기를 비교적 잘 헤쳐나가고 있다는 중국조차 정부의 경기부양 노력만으로는 한계에 부닥칠 것이다. 결국 중국도 암울한 수출시장의 현실과 대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시나리오는 미국 재무부 출신의 경제학자 브래드 세서가 말한 ‘중국 수수께끼’와 같은 맥락이다. 세서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다른 수출주도형 국가는 부진한데 유독 중국만 성장세를 이어가는 이유를 설명했다. 핵심은 지난해 9월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중국 정부의 정책 변화다. 중국은 다른 수출주도형 국가와 달리 내수 경기 부양을 위한 여력이 충분했다는 것이 잠정 결론이다.

홍콩에서 경제잡지를 발행하는 마크 페이버는 현재 경제상황을 타락한 술판에 비유한다. 기준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떨어뜨린 중앙은행은 무책임한 바텐더에 비유된다. 취한 사람들에게 계속 술잔을 돌리는 것은 잘못된 처방이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점점 더 비틀거린다. MSCI 아시아·태평양 지수는 3월 9일 5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이후 49%나 반등했다. 인도의 뭄바이에서 상하이·도쿄까지 아시아 주요 증시는 최악의 경기침체는 끝났다며 일제히 환호했다.

당장의 호재에 투자자들이 축배를 드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W자형 더블딥이 현실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오늘의 주가 반등이 몇 달 뒤 불행으로 변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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