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수사가 남긴 것]안기부 '정치공작'금지 새 이정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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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새 정부 출범 직후 정국을 뒤흔들었던 북풍공작 수사가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었다. 검찰은 재미동포 윤홍준 (尹泓俊) 씨 기자회견과 오익제 (吳益濟) 전천도교교령의 편지사건 등과 관련, 권영해 (權寧海) 전안기부장.박일룡 (朴一龍) 전1차장.임광수 (林光洙) 전기획판단 (101) 실장 등 모두 10명의 안기부 간부.직원을 구속했다.

검찰은 안기부와 협조체제를 유지하며 3개월간 진행해온 수사를 마무리짓고 오는 20일 수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수사의 가장 큰 의미는 안기부의 국내 정치공작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하고 사법처벌의 대상으로 삼은 데 있다.

검찰은 수사도중 權전부장의 할복소동 등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안기부가 특정후보 (金大中대통령후보) 의 당선을 저지할 목적으로 부장 이하 수뇌부급 간부들이 이른바 '색깔논쟁' '용공시비' 를 조장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안기부의 대대적인 개혁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북풍공작의 최대 피해자인 金대통령과 새 정부는 옛 안기부 인맥을 정리하고 무게중심을 국내정치에서 대공수사 및 해외정보, 특히 무역.경제관련 정보수집 기능으로 옮기는 대수술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번 수사는 여야 정치인들의 대북 (對北) 커넥션 의혹과 관련한 부분에서는 처음부터 한계를 안고 있었다는 지적이 높다.

검찰과 안기부는 이른바 '이대성 파일' 에 거명된 정치인들을 광범위하게 조사했지만 지난해 대선 당시 각 정당의 대북창구 역할을 했던 정재문 (鄭在文) 한나라당 의원.최봉구 (崔鳳九) 전 평민당의원 등 3명을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데 그쳤다. 鄭의원이 북한 안병수 조평통위원장에 3백60만달러를 제공했다는 등 사건의 핵심 의혹은 밝혀진 것이 없다.

이와 관련, 검찰관계자는 "이대성 파일의 내용은 상당부분 조작된 것으로 보인다" 고 말했다. 즉 안기부 전직간부들이 자신에게로 수사망이 좁혀지자 사건의 본질을 희석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과장된 문건을 정치권에 누출시켰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鄭의원.崔전의원 등이 대선을 눈앞에 둔 민감한 시점에서 제3국에서 북한의 고위 당국자들을 여러차례 접촉한 것은 사실로 드러나 그 배경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점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인사차 만났다" "교류사업을 의논한 것에 불과하다" 는 당사자들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자들과 정치인들이 모종의 밀약을 했다는 세간의 의혹은 당분간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남북한 당국간의 미묘한 사안인 만큼 검찰로서도 사건의 전모를 캐내기에는 큰 부담을 안고 있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예영준 기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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