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 직원들 근육병 어린이위해 2억 쾌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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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崔모 (42.대전시유성구) 씨는 매월 한차례 큰 아들 (14) 과 작은 아들 (13) 을 휠체어에 태워 고속버스편으로 서울 영동세브란스병원을 찾는다. 병명도 모른 채 앓던 두 아들이 1년반전 근육이 무력화되는 '근육병' 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받은 후 국내에 유일한 이 병원 근육병클리닉에 통원치료를 하고 있는 것. 전직 경찰관인 崔씨는 아들의 증세가 악화돼 숨쉬기조차 어려워지자 직장까지 그만두고 병간호에 매달리고 있지만 비용때문에 입원치료를 시킬 수 없어 시름이 크다.

崔씨는 16일 두 아들과 함께 영동세브란스병원 클리닉을 찾았다가 문재호 (文在豪) 박사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LG전자에서 펼치고 있는 '우수리 운동' 위원회가 어린이 근육병 환자들을 위해 2억원을 출연키로 했다는 말이었다.

'우수리 운동' 이란 직원 월급 가운데 1천원 미만, 즉 1~9백99원의 우수리 돈을 모아 이웃을 위해 쓰자는 운동. 이 회사 이수봉 (李洙奉.39) 해외커뮤니케이션팀장이 95년 4월 우수리 돈을 한데 모으면 뭔가 좋은 일에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박한 생각을 제안하면서 시작된 운동이다.李팀장은 노조와 회사에 자신의 취지를 설명했고 그의 진지한 설명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에서는 월급에서 우수리 돈을 자동 공제할 수 있는 전산프로그램을 개발해줬다. 李팀장은 서울 본사는 물론 청주.창원.김해.구리 등 전국의 공장과 각 지역 사업장을 돌며 운동의 취지를 설명한 결과, 두달만에 전직원 3만여명 가운데 2만6천여명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한 사람이 내는 돈은 매달 평균 4백~4백50원 정도. 한달이면 1천여만원이 모인다. 이렇게 모은 돈이 5월 현재 3억2천만원을 넘었다.

LG전자 우수리운동 운영위원회는 최근 근육병으로 고통받는 어린이가 적지않지만 전문치료기관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그동안 모은 돈 가운데 2억원을 한국 어린이근육병재단 (이사장 金忠漢)에 쾌척키로 했다.재단측은 이 돈으로 경기도성남시분당구야탑동 3천평 부지에 지하 2층.지상 6층 규모의 근육병 재활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재활센터가 완공되면 환자들의 입원치료가 보다 수월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나머지 돈은 5억원이 될 때까지 계속 모을 작정입니다. 그 정도면 이자만으로도 어려운 사람들을 계속 도울 수 있겠죠. " 李팀장은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돕는 '우수리 정신' 이면 너나없이 어려운 IMF시대도 무사히 넘길 수 있지 않겠느냐" 며 활짝 웃었다.

최재희 기자 〈cjhee@joongang.co.kr〉

*어린이 근육병이란=3~4세에 발병, 어깨와 엉덩이 근육이 무력화되다가 13~14세에는 아예 걸을 수 없게 되고 16~17세에는 호흡근육마저 마비돼 죽음에 이르는 난치병이다. 선천적인 염색체 이상, 태아 상태의 알콜 및 약물 중독, 출생후 신진대사 이상 등이 원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어렸을때 확인하면 약물치료와 재활운동으로 회복이 가능하다.

전국에 1만~1만5천명의 어린이 근육병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으나 법적으로 장애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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