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월북 미국인 젠킨스 일본 도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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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39년 전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중 월북했던 찰스 젠킨스(64)가 18일 일본 정부가 마련해준 전세기편으로 부인.딸 둘과 함께 일본 하네다(羽田)공항에 도착했다.

북한에서 복부 절개수술을 받았던 젠킨스는 도착 직후 도쿄의 병원에 입원했다. 젠킨스는 위수술에 따른 합병증 등을 치료받을 예정이다. 부인 등 가족도 당분간 병원에서 함께 생활하기로 했다. 젠킨스의 두 딸은 북한에서 자카르타로 올 때 가슴에 달았던 '김일성 배지'를 떼고 '일본인 납북 문제 해결'을 상징하는 파란색 리본을 달고 있었다.

기구한 젠킨스 가족사는 냉전의 비극으로 점철돼 있다. 부인은 1970년대 북한 공작원에 의해 일본에서 납치됐던 일본인 소가 히토미(曾我.45). 북한에서 일본어 교사로 근무하던 소가는 80년 젠킨스와 결혼, 딸 둘(베린다.미화)을 낳았다.

젠킨스 가족은 2002년 9월 헤어졌다. 그러다 일본에 있던 소가와 평양에 있던 젠킨스, 두 딸이 최근 인도네시아에서 만났고 18일 일본에 도착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로부터 '탈영자'로 규정된 젠킨스의 앞날은 아직 불투명하다.

◇탈영병 젠킨스=베트남 전쟁 중이던 65년 1월 주한미군 중사였던 젠킨스는 비무장지대를 통과해 월북했다.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미군 측은 " 베트남 전선에 배속되는 것을 겁내 월북했다"고 추정할 뿐이다. 젠킨스의 행방은 96년 그가 북한 영화 '이름없는 영웅'에 출연하면서 확인됐다. 그는 북한에서 영어 교사로 활동하면서 선전 영화의 외국인 역으로 자주 출연했다.

◇피랍 일본인 소가=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2년 9월 소가 등 일본인 납치 사실을 시인했다. 평양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와 회담을 했을 때다. 그 뒤 소가는 납치된 일본인 가운데 생존자 네명과 함께 일본을 방문한 뒤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고 고향인 니가타현에 눌러앉았다.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 5월 다시 평양을 방문, 피랍 생존자의 가족 일곱명을 데리고 왔다. 하지만 젠킨스와 두 딸은 올 수 없었다. 젠킨스가 '탈영 혐의'로 미국의 처벌을 받을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일본 당국의 제안으로 소가와 젠킨스, 두 딸은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에서 최근 만났다. 미국과 범죄인 인도조약이 없는 국가라 선택됐다. 1년반 만의 재회였다. 일본 정부는 미국과 교섭한 끝에 "신병 치료 기간에는 범인 인도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실마리 풀린 북.일 교섭=젠킨스의 일본 귀국으로 납치 문제가 대부분 풀리게 됐고, 북.일 수교협상도 크게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북한에 납치된 이후 행방불명 상태인 10명의 행적 조사가 과제로 남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양국은 어떤 식으로든 해결의 실마리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부의 젠킨스 사법처리 문제도 아직 남아 있다. 하지만 미국 정부가 형식상 기소만 하고 처벌은 하지 않는 쪽으로 처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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