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곡 많은 68년 삶, 열 권 소설로 정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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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문학평론가는 최근 ‘이 시대 문학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따지는 글에서 “문학은 패배하고 좌절하여 스스로 창공의 별이 되는 고유한 힘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싸움에서 져서 오히려 고귀한 존재가 된다는, 역설적인 문학의 효용이 늦깎이 법무사 이한준(68·사진)씨에게는 제대로 들어맞는다. 소설이라고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초짜 중의 초짜’인 이씨가 자전적인 장편소설 『피안에 지다』(시우출판) 집필을 통해 스스로 인생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는 시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씨는 철도국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해방 직후 좌익활동이 문제가 돼 해직되면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62년 서울대 중문과에 입학했지만 학비를 낼 수 없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워 한 학기만에 그만둔다. 이후 경제기획원 공무원, 민간 기업 사원 등을 거치며 자리를 잡는 듯 했지만 개인 사업이 망하면서 8년간 실업자 신세로 지냈다. 절치부심, 마음을 다잡은 이씨는 5년간 준비한 끝에 55세이던 96년 법무사 시험에 합격했다. 2004년에는 서울대에 재입학, 지난해 졸업장을 따기도 했다.

“순탄치 만은 않았던 내 인생을 좀 정리해보고 싶었죠.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소설이 적당했던 거구요.”

11일 이씨가 밝힌 소설 집필 이유다. 『피안에…』는 200자 원고지 1만쪽 분량으로 모두 열 권이다. 현재 세 권째까지 나왔고 나머지는 교정·편집 작업 중이다. 이씨를 빼닮은 주인공 철준이 북한에서 기독교 선교를 하다 결국 처형당하는 것으로 끝맺는다. 이씨는 “2003년부터 쓰기 시작해 밤 샌 날도 많다. 소설의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한 달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평소 종교에 관심이 있어 올해 초 감리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이씨에게 나이는 그야말로 숫자일 뿐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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