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속도전 ① 연구개발 속도전’ 펼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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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 중인 ‘투명 TV’. 이 기술은 10일 ‘R&D 속도전 대국민 보고대회’에서 중점 개발할 88개 핵심 기술 중 하나로 선정된 것이다.

#1 국내 전자업체인 A사는 지난해 10월 미국 바이어와 수출 협상을 할 때 모든 기술 공정에 대한 인증 평가서를 제출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미국재료학회(ASTM)와 미국섬유화학염색자협회(AATCC)가 요구하는 기준이었다. 당시 국제표준화기구(ISO) 인증과 국내 인증마크밖에 없었던 이 회사는 관련 연구소 등에 문의했다. 하지만 미국 기준의 인증을 받으려면 준비 기간이 1년 넘게 걸린다는 말을 들었다. 결국 이 회사가 인증 준비를 하는 사이 바이어의 주문 물량(약 6000억원)은 다른 경쟁 국가 업체로 넘어갔다.

#2 경북 영천에 있는 신명금속은 2004년 해군 함정에 들어가는 실린더 헤드를 자체 개발하려 했다. 당시 이 실린더 헤드는 전량 수입돼 개당 2000여만원씩 하는 고가품이었다. 신명금속은 그러나 기술 부족으로 실린더 헤드의 도면조차 완성할 수 없었다. 이 회사는 한국생산기술연구원에 기술 지원을 요청했다. 생기연은 박사급 인력을 동원해 기술개발에 들어갔다. 연구진은 외국산 실린더 헤드를 잘라 보고, CT단층 촬영하는 방법을 통해 6개월 만에 도면을 완성했다. 신명금속은 실린더 헤드를 자체 생산할 수 있게 됐고 이 제품은 외국산의 절반 가격에 납품됐다.

이 두 회사의 사례처럼 기술개발 기간 단축은 기업에는 생존과 직결된다. 연구개발(R&D) 기간이 단축돼 상용화 속도가 빠를수록 국내 기업의 경쟁력은 그만큼 강화되는 셈이다. 지식경제부 산하 13개 정부 출연 연구소가 경제 파급 효과가 큰 88개 핵심 프로젝트를 선정해 ‘R&D 속도전’을 전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출연 연구소 주도로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조기 상용화해 세계 시장을 선점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정부출연 연구소는 평균 9개월의 연구기간을 단축해 13조원의 경제적 효과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88개 프로젝트에는 ▶발화 방지 친환경 마그네슘 합금 ▶알루미늄 자동차 부품 용접기술 ▶지능형 굴삭 시스템 ▶수출용 전통 식품의 대량 생산 기술 ▶그린발전 기술 등이 포함돼 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은 10일 대전 한국기계연구원에서 열린 ‘R&D 속도전 대국민 보고대회’에 참석해 “R&D 속도전은 단순한 위기극복의 수단이 아니라 우리 경제를 선진국 대열에 올려놓기 위한 핵심 전략”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한국 경제도 흔들리고 있다. 세계 경제성장률은 올해 -1.3%로 움츠러들고 한국도 1980년과 98년 이후 세 번째로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경기침체기에는 기업의 R&D 투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기업의 R&D 투자 증가율이 지난해 8.8%에서 올해는 2%에 머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같은 R&D 위축은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다시 기업의 R&D 투자 축소로 연결되는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있다.

한욱 산업기술연구회 이사장은 "정부출연 연구소들이 앞장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첨병’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출연 연구소는 인력 5462명, 장비 8555개를 보유하고 있으며 올해 정부 R&D 예산 12조3000억원 가운데 1조8000억원을 집행한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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