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업의 실력]上.주식시가총액으로 본 한·미기업 가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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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사상 초유의 난국에 빠진 기업들이 강도높은 구조조정으로 체질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갈수록 '기초체력' 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고금리와 극심한 경기침체의 위기상황을 돌파해야 하지만 자금조달 능력의 토대가 되는 기업 규모 자체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시장가치인 시가총액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국내 상장기업의 시가총액은 지난 7일 현재 74조8천7백94억원. 미 달러화로 환산하면 5백34억달러 수준 (달러당 1천4백원 기준) 이다.

이에 비해 최근 폭발적인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의 상장주식 시가총액은 9조5천7백67억달러 (지난 2월말 기준) 로 우리 증시의 1백81배 규모다. 복수 증권거래소 체제인 미국내 다른 7개 증권거래소의 규모를 합하면 규모는 3백배를 훨씬 넘어선다. 또 도쿄 (東京) 증권거래소의 시가총액은 2조4천1백71억달러. 오사카 (大阪) 증시 등과 합하면 규모는 더욱 늘어난다.

시가총액기준 세계최대 기업인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 (GE) 은 지난 7일 현재 2천6백60억달러를 돌파했다. 이 회사 주식이면 우리 증시를 통째로 다섯번쯤 살 수 있는 규모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시가총액도 우리 증시를 세번 사는데 족한 규모다.

기업의 시장가치인 시가총액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기업의 총체적인 능력의 한계와 체력의 열세를 나타낸다.

국제시장에서 내로라하는 기업들로 여겨지고 있는 일부 국내기업을 시가총액의 잣대로 미국기업과 비교해 보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지난 7일 현재 한국전력이 최대규모인 9조9천2백58억원이고 삼성전자가 6조9천6백억원, 포항제철이 5조원을 넘고 있다. 달러로 환산하면 한국전력은 70억달러로 미국에서 시가총액 기준 2백45번째 기업인 디지털 이퀴프먼트 (71억달러) 수준이며 삼성전자는 49억달러에 불과하다.

시가총액이 적다는 것은 그만큼 직접자금 조달능력이 부족하고 부채경영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즘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부채 줄이기도 유상증자가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우리기업의 허약체질로는 한계가 너무 빤히 드러난다.

우리 기업들의 시장가치가 이렇게 작은 것은 기업 스스로 차입경영을 선호했고 정부가 증시수급조절에 급급해 자본증가의 기회를 차단해온 결과다. 예컨대 지난 2월 폐지됐지만 정부가 한달동안의 유상증자 물량을 1천억원으로 제한해온 결과 우량기업조차 자본금 증가를 통한 기업가치 증대보다는 부채에 의존하는 버릇을 키워왔다.

자본시장을 뒷전으로 몰아둔 것은 또 '대표선수' 를 키우지 못한 결과도 초래했다.

증시전문가들은 한국통신.삼성생명.현대중공업 등에 일찌감치 상장의 길을 열어줬으면 SK텔레콤을 능가하는 주가가 형성됐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미국은 유상증자도 부족해 이자 한푼 없이 시가총액을 높이는 액면분할을 적극 권장해왔다.

지난 67년부터 모두 다섯차례에 걸쳐 액면을 분할한 펩시콜라가 자기자본은 69억달러인데 시가총액은 6백33억달러에 달하는 것만 봐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동호 기자 〈d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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