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로 보는 세상] 자유 찾아, 웃음 찾아 모험세계로 떠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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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핀의 모험 1,2권
애비 지음, 권영미 옮김, 윤종태 그림
서울문화사, 각권 199쪽, 각권 7500원

농노에서 광대의 노예로, 다시 영주의 아들로….
크리스틴은 결국 자유인의 길을 택한다.

꼬마 백만장자 팀 탈러 1,2권
제임스 크뤼스 지음, 정미경 옮김
논장, 각권 200여쪽, 각권 8000원

모든 아이가 해리 포터처럼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입학허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집 옷장이 나니아 나라와 연결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 11월 아침에 두 마리의 뱀이 그려진 책을 훔칠 수 있는 사람도 『끝없는 이야기』(미하엘 엔대)의 주인공 바스티안뿐이다. 아이들의 현실에는 보물지도도, 그 지도를 빼앗으려는 외다리 악당도 없다. 모험 이야기의 주인공에 비하면 아이들의 일상은 참 심심하다.

그러나 이야기의 주인공은 단 한 가지 모험만을 경험하지만 책 밖의 아이들은 수많은 모험 속으로 뛰어들 수 있다. 긴장감 넘치는 모험의 세계는 실제로 겪는 것보다 책으로 읽는 것이 더 짜릿하다. 프루스트가 말한 것처럼 삶의 사건들은 완만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만 한평생이 걸린다. 아이들이 모험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은 단순히 재미 때문만은 아니다. 아이들은 거친 세상으로 뛰쳐나와 도저히 넘기 힘들 것 같은 벽을 뛰어 넘는 이야기 속 주인공을 통해 ‘되고 싶은 자신’을 발견한다.

2003년에 뉴베리상을 받은 애비의 『크리스핀의 모험』은 중세 영국을 배경으로 13세 소년이 ‘크리스핀’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크리스핀은 아버지가 없는 사생아로 장원의 모든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는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어머니까지 돌아가시자 크리스핀은 장원 관리인인 에이클리프의 음모에 빠져 도둑 누명을 쓰고 쫓기는 몸이 된다. 크리스핀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을 피해 거친 세상으로 뛰쳐나간다. 어머니가 남긴 납십자가에 쓰인 글의 의미는 무엇일까? 아버지는 누구일까? 왜 장원 관리인 에이클리프는 자기를 죽이려 드는 걸까? 숨가쁜 추격 속에서 크리스핀은 납십자가의 비밀을 벗고자 발버둥치지만 의문은 늘어만 간다.

사생아로 태어난 농노에서, 광대 베어의 노예이자 영주의 아들로, 그리고 자유인으로 변신한 크리스핀. 아마 독자들은 크리스핀이 영주의 버려진 아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빼앗긴 지위와 재산을 찾고 에이클리프에게 복수할 것이라고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크리스핀은 발길 닿는 대로 갈 수 있는 영혼의 자유를 택한다. 크리스핀은 권력이나 돈보다 자유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모험 속에서 깨닫게 된 것이다. 어린 소년이 거대한 사회와 정면으로 부딪쳐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과정이 박진감 넘친다. 특히 잔혹한 중세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가 이야기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크리스핀의 모험』이 신분과 핏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아가는 이야기라면 안데르센상을 받은 제임스 크뤼스의 대표작 『꼬마 백만장자 팀 탈러』는 빼앗긴 웃음을 되찾아가는 과정에서 생과 사, 선과 악 같은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파헤치고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유쾌한 모험담이다.

지저분한 뒷골목에서 새 엄마와 사는 팀은 보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지는 웃음밖에 가진 것이 없다. 경마장에서 만난 마악 남작은 행복을 전염시키는 팀의 웃음을 탐내고, 팀은 부자가 될 욕심에 자신의 웃음을 판다. 하지만 웃음을 판 뒤 팀은 어떠한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고 초조함과 두려움 속에서 고통 받게 된다. 웃음이 없는 인간에게는 슬픔도 없다. 웃음 없이 살아가는 것은 아무 맛도 나지 않는 유리를 핥는 것과 같다. 팀은 마악 남작에게 빼앗긴 웃음을 되찾으려 노력하지만 마악 남작은 어렵게 차지한 웃음을 돌려주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웃음이 무엇 때문에 중요한 걸까? 그 답은 이야기 속 연극에서 찾을 수 있다. 왕은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 산산조각 날 걸 안다면 어떻게 유리잔이 지금 빛난다고 기뻐할 수 있을까?” 떠돌이가 말한다. “영원히 빛나는 게 아니란 걸 알기 때문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기쁜 거지요.” 그러고 그는 한 마디를 덧붙인다. “웃음이 있기에 인간은 동물과 다른 거지요. 웃어야 할 때 웃을 수 있어야 사람인 거지요.” 팀은 기발한 내기로 웃음을 되찾고 아이들에게 웃음을 선사할 인형극단을 열게 된다.

이 두 동화는 모험을 통해 빼앗긴 것을 찾고 진정한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이야기다. 크리스핀은 아버지에게 빼앗긴 이름과 자유를, 팀은 마악 남작에게 빼앗긴 웃음을 되찾는다. 모험은 삶에 부여된 시련이며,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며, 동시에 무엇인가를 이룩해내는 성취의 시간이다. 아이들은 모험을 통해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 동화 속 주인공들은 모험을 통해 약하다고 생각한 자기 안에 내재된 힘과 가능성을 발견하고, 희로애락과 생과 사, 선과 악과 같은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된다. 또 모험은 진리라고 믿었던 것을 의심하게 하고, 늘 익숙하게 생각한 것들을 낯설게 하며, 새로운 것들과 관계를 맺게 한다.

제임스 크뤼스는 “어린이들이 사고하는 동시대인으로 자라나도록, 우선 그들에게 함께 생각하기를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즉 아이들이 현실을 견뎌낼 수 있고, 그 현실을 스스로 결정하고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세상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무엇인가를 탐색하며, 공동체가 존중하는 가치를 내면화해야 한다. 그런 단계에 있는 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을 모험 이야기 속에서 발견한다. 아이들은 자신처럼 평범한 모험 이야기의 주인공이 어떻게 견고한 장애물들과 어른들이 지배하는 험한 세상을 이겨내는지를 바라보면서 용기와 통쾌한 해방감을 동시에 느낀다.

류화선(인터넷 서점 알라딘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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