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협상력 강화는 부수적 목표일 뿐이다. 스탈린의 동상이 밧줄에 끌려 넘어지고 루마니아의 철권통치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와 이라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의 죽음을 목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경제회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 왕가의 정치적 생존이다. 따라서 핵은 북한이 끝까지 움켜쥐고 갈 생존의 마지막 보루다. 핵실험과 펑펑 쏘아 대는 미사일은 옛 소련의 해체와 함께 사라진 핵우산의 공백을 메우고 군부를 만족시킴과 동시에 권력승계의 정통성을 배가하는 일석삼조의 생존수단이다.
우리는 우리 시각으로만 북한을 보아 왔다. 이 때문에 북한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왜 국민장 기간 중에 굳이 핵실험을 했을까, 경제지원을 해준다는데 왜 핵을 포기하지 않을까, 북한에 이런 건 의문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전에 조전을 보냈지만 사생결단의 각오로 생존의 몸부림을 치는 북한의 주된 관심사는 남한이 아니다. 핵 포기의 대가로 경제지원을 하겠다는 제안은 사세가 기울어 가는 기업에 공적 자금을 제공할 테니 사주의 경영권을 내놓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들릴 것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핵실험을 한 지금으로선 경제지원 중단이나 말뿐인 결의안은 아무 효과도 없다는 점이다. 강경정책이든 온건정책이든 경제적 접근보다는 김정일의 최고 관심사인 김 왕가의 정치적 생존에 포커스를 맞춘 정치적 접근이 필요하다.
김용호 연세대 교수 북한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