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술길잡이]플라톤 '국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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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12개 대학들이 고전을 바탕으로 논제를 출제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한 것은 암기한 내용을 답안지에 옮겨쓰는 것을 지양하고 독서를 바탕으로 한 글쓰기를 장려하기 위해서다. 고전에 실린 내용을 암기하라는 말이 아니고 고전을 바탕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것이다.

플라톤의 '국가' 는 대표적인 고전으로 꼽힌다.약 2천5백년 전에 쓰여진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사물에 대한 근본적 인식을 가능케 하는 다양한 주제들이 포함돼 있다.

플라톤이 활동했던 시기는 그리스 도시국가가 해체되는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이었다. 플라톤은 이같은 위기의 원인을 소크라테스가 처형되는 등 민주주의를 빙자한 중우 (衆愚) 정치에서 찾고있다.

'국가' 는 바로 이같은 중우정치에 대한 비판적 정치 철학서이다. '국가' 가 비판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소피스트인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 라는 명제. 이 명제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지각에 따라 파악된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이며, 따라서 모든 주장은 대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럴 경우 결국 절대적으로 보편타당한 진리는 없으며 주장의 강.약은 설득술에 의해 결정된다.

이같은 상대주의는 당시 민주주의를 옹호했던 정치적 세력들에게 강력한 힘을 갖게했던 논변이었다. 이를 비판하기 위해 '국가' 는 지성에 의해 파악된 절대적으로 보편타당한 '이데아' 가 있음을 주장한다.

모든 사물에 가장 적합하고 좋은 상태가 있듯이 국가도 가장 정의로운 상태가 있다는 것. 인간의 노동도 결국 이같은 가장 적합하고 정의로운 상태를 닮아가기 위한 '모방' 작업이며 '이데아' 는 모방의 본보기라는 것이다. '동굴의 비유' '태양의 비유' 등을 통해 모방이 이뤄지는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 '국가' 는 직관적 사유능력에 의한 지식만이 진리체계임을 주장한다.

'국가' 는 이를 통해 지식인에 의한 정치, 지혜를 바탕으로 한 정치를 제안한다. 이 책은 워낙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어 어느 한 폐이지를 펴도 논제를 출제할 수 있을 정도다.

우선 '인간은 만물의 척도' 라는 프로타고라스의 명제와 플라톤의 비판을 대비해 주고 '인간의 감각은 과연 믿을 수 없는 것인가' 를 묻는 논제를 생각할 수 있다. 이는 플라톤 당시 뿐 아니라 현재에도 끊임없이 논의되고 있는 주제이기 때문에 한번쯤 걸러두는 것이 필요하다.

또 중우정치에 대한 '국가' 의 비판을 토대로 민주주의의 가능성과 위험을 묻는 논제도 출제가 가능하다. 다소 어렵기는 하지만 지식을 바탕으로 한 철인정치의 위험성을 묻는 논제도 권력이 소수의 엘리트에게만 집중돼 시민을 우민화시키는 오늘날의 정치상황과 관련해 짚어 볼만한 주제이다.

마지막으로 지식을 얻는 과정에서 '모방' 이 갖는 의의와 한계에 대해 묻는 논제도 출제될 법한 주제로 보여진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wjsan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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